“어려운 시기에 유망한 기업들의 국내 유턴은 우리 경제에 희망을 준다.”
지난해 8월 ‘집 나갔던’ 현대모비스가 돌아왔다. 맏형이 중국 공장 2곳을 닫고 울산에 새 공장을 열자 아우 격인 5개 중소·중견 현대차 협력업체도 함께 한국행을 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공식에 직접 참석해 국내 최초 대기업 유턴 사례를 치켜세웠다. “국내 복귀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겠다”며 전폭 지원도 약속했다.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정부의 유턴 유도정책은 대기업에 한해선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2013년 제정된 유턴기업 지원법(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은 중소·중견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성과가 미진하자 시행 5년 만인 2018년 ‘유턴기업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았다. 보조금과 세제감면 등 대기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가 핵심이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이 받는 다채로운 세제·인력·금융 혜택에 비하면 범위와 강도 모두 제한적이다. ‘2년 이상 해외사업장을 운영한 뒤, 해외사업장을 청산·양도하거나 생산량을 25% 이상 축소하고 국내에 복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걸림돌이다. 이런 탓에 유턴법 시행 이후 돌아온 68개 기업(철회·폐업 제외) 중 대기업은 현대모비스 뿐이다.
덩치 큰 대기업의 유턴이 낳는 고용·투자 효과는 분명하다. 현대모비스 사례처럼 중소 부품·협력사의 동반 유턴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해외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 복귀를 결심하긴 쉽지 않다.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국내 규제 회피와 현지시장 확보, 낮은 인건비 활용 등 나름의 경영전략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이 국내로 복귀할 유인은 적은 셈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국내 내수시장이 작고 인건비와 규제 문제가 심각해 유턴이 매력적이지 않다”며 “규제 완화 등 환경 개선 없인 ‘괜히 들어왔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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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관심 못끄는 유턴정책━
‘코로나19’(COVID-19) 사태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전환할 새 기회가 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셧다운(가동 중단)에 들어가는 등 제조업 글로벌 공급망(GVC) 붕괴 위기를 목격한 세계 각국은 유턴 지원을 앞다퉈 강화한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해외진출 기업이 일본 내로 복귀할 경우 이전비용을 대기업은 절반, 중소기업은 3분의2까지 보조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감면 등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에 사활을 걸어 온 미국도 자국으로 복귀하는 모든 사업장을 유턴기업으로 지원한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기업 지원대책 일환으로 유턴기업에 대한 혜택을 대폭 강화했지만 여전히 대기업들의 관심을 끌긴 부족하다.
산업부는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잇따른 일본의 수출규제와 코로나19 사태로 차질이 빚어진 글로벌 공급망(GVC)을 안정화하는 차원에서 ‘핵심기업 국내유턴’을 확대키로 했다. 종전 고용 및 산업위기지역이나 신설투자 유턴기업에만 적용하던 법인세 최대 7년 감면(5년 100%+2년 50%) 혜택을 증설 투자 유턴 기업에도 적용한다.
제조기업 외에 지식서비스산업·정보통신업도 조세 감면, 고용보조금 지원, 산업단지 우선 배정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국·공유지 사용특례도 신설했다. 비수도권에 입주하는 유턴기업에 국·공유재산 장기임대(50년), 임대료 감면, 수의계약 등을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조선기자재, 철강, 통신장비, 발광다이오드(LED) 부품, 주얼리, 식품 등 다양한 기업들이 코트라와 지방자치단체로 유턴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은 1곳도 없고 중견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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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지원대책 대전환 계기 삼아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확실한 지원에 나설 때라고 촉구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금은 대·중소기업을 따질 시점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정부가 친기업으로 돌아섰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 인허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선 ‘대기업=적폐’ 프레임을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떠나는 기업은 줄이고 돌아오는 기업은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기업 정서와 규제가 강하고 노동 유연성이 낮은 한국에 기업들이 투자하긴 어렵다”며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기업들의 유턴 유인이 늘긴 했지만 이를 현실화하기엔 국내 환경이 열악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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