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법의 핵심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날치기' 제한이다. 다수의 힘을 막을 수 없을 때 본회의장 점거 등 물리적 다툼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이를 위해 국회는 2012년 선진화법을 제정하면서 법안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제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도입, 국회폭력 금지 등의 조항을 포함했다. 자칫 아무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식물국회'를 막기 위해 신속처리안건 지정이라 불리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만들었다.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한 법률 통과 시 정족수의 60% 이상(재적 5분의 3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최장 330일에 걸쳐 심사하고, 심사 기간이 끝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며 '식물국회', '동물국회' 모두 연출됐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나만 옳은 타락한 진영의식 앞에서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선진화법은 법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꼼수'에 허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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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적 판단에 '왔다갔다'…누굴 위한 선진화?━
19대 총선 결과를 열어보니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했고 스스로 발목을 잡아버린 꼴이 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 후반기였고 '미래권력'인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찬성 의사를 밝혔고 법안이 통과됐다.
2015년 말 선거구획정안, 노동법과 테러방지법 등 통과를 원하는 새누리당이 선진화법에 막히자 선진화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고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의석을 합치면 과반이 넘는 구도가 만들어졌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017년 3월에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을 중심으로 다시 선진화법 개정 목소리가 나왔다. 다당제 상황과 맞지 않고 '식물국회'가 우려된다는 명분이었다. 국회의원 과반수인 최소 151석 이상으로 낮추자는 개정안을 발의되기도 했다. 이때는 한국당이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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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석이 문제가 아니다━
선진화법이 마련됐지만 여야 협치라는 선순환은 사라졌다. '180석 이상 확보‧강행 혹은 180석 저지'가 목표가 된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져왔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선진화법을 무력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다수 의석을 '절대 선'으로 여긴다면 진영대결의 얽힌 실타래는 풀리지 않는다.
선진화법을 만든 것이 오히려 여야의 합의 정신을 경시하는 태도를 유발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인데 선진화법만 어기지 않으면 혹은 유리하게 잘 이용하면 된다는 것은 타락한 진영의식의 발로라는 지적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에 협치의 주춧돌이 절실하다. 동물, 식물국회를 모두 경험한 20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에서라도 필리버스터제를 없애는 등 전면 재개정 등으로 바꿔야한다.
박진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여야가 합의를 못하는 것은 정당 입장에서 정파나 지지층에 기대 버티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21대 국회에서는 어떤 본인의 정치목적이나 맹목적 당론 등 다른 요인들 때문에 의사결정을 바꾸거나 왜곡하지 않는 합리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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