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지기 A씨(36)와 B씨는 최근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화선이 됐다.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둔 A씨는 정부가 ‘12·16 부동산 정책’에 이어 ‘수용성’(수원·용산·성남) 등 지역으로 규제를 확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 돈 있는 부자는 놔두고, 왜 서민을 건드리냐”는 주장이다.
전세 아파트에 사는 B씨는 “9억원 이하 아파트는 종부세(종합부동산세) 대상도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A씨는 “위축 효과가 더 무섭다”고 맞섰다. 결국 이들의 논쟁은 고성과 가벼운 몸싸움으로 끝났다.
# 서울 소재 대학생 C씨(24)는 동기들과 식사 도중 언성을 높였다.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 출신인 C씨는 “특목고 학생들은 그 곳에서 더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대학을 잘 가는 것”이라며 정부의 특목고 폐지 정책을 반대했다.
지역 일반고 출신 D씨는 반발했다. 특목고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데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목고 출신이라 명문대에 가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목소리가 커지자 이들은 식사 도중 자리를 떴다.
우리 일상 생활 속 ‘극단의 대결’ 사례다. 특목고 폐지, 정시 확대, ‘블라인드 채용’(학력, 나이 등 일명 ‘스펙’을 배제한 채용 방식), 부동산 규제, 보육, 정년연장, 국민연금 등 정부 정책을 두고 국민들은 극단의 대리전을 치른다.
모처럼 만난 친구와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고성이 터져 나온다. 세대 간 갈등에서 세대 내 갈등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슈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극단의 흐름은 획일화된다. 극단적 찬반만 존재하는 현실은 진영 의식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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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교육’, 3050 ‘부동산’, 6070 ‘노후’━
대학가를 달궜던 ‘명문대 역차별’ 논란이 이와 무관치 않다. 일부 대학생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정책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노력이 채용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온라인상에서 대학생 간 ‘혈전’을 일으키는 단골 소재다.
‘3050’은 단연 부동산이다. 취업 후 결혼, 출산 등을 앞둔 30대와 아직 일을 해야 하는 학생 자녀를 둔 50대가 여기에 속한다. 끝없이 솟구치는 부동산 가격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나 본인은 예외다. ‘내 집 마련’ 후에 정부 규제가 작동하길 바라는 속내다. 합리적 사고와 이성은 돈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부딪히면 싸움이 난다. 타락한 진영의식이 작동하면 상대의 합리적 진단과 주장을 무시한다. ‘3050’ 세대가 술자리에서 “정부가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정부 고위직부터 집 내놓아라” 식의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이유다.
‘6070’ 세대는 정년 연장에 주목한다. 정부가 재고용·고용연장 의무 등을 통해 현행 60세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자 공무원과 공공기관,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 등은 대체로 찬성이다. 반면, 일반 직장에서 은퇴를 앞둔 이들은 “60세 정년은 지켜지냐”며 체감 가능한 정책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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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 ‘가속도’…갈등 ‘브레이크’ 고장━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키운다. 어느 한쪽 진영에 붙는다. 막말, 고성, 묵살, 몸싸움 등 정치권 행태에 건전한 진영의식을 가진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이다. 국회의원은 갈등과 이해관계의 조정 대신 정쟁에 온몸을 바친다. 갈등 조정보다 정쟁이 몸값을 높이는 데 더 이롭다.
열성 지지들도 직접 링 위에 오른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갈등 조정 공간의 부재는 곧 공동체 분열이다. 서로 내뱉은 말을 다시 서로 확대 재생산하면서 궤변을 각 진영의 논리로 둔갑시킨다. 이슈가 데워져 뜨거워질때면 어김없이 언론이 등장해 갈등을 부추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자 가치에 충실하되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서로 타협해가는 식으로 가야 상대가 봤을 때도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며 “정치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정치인도 자질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제도는 금방 갖다놨는데 의식과 문화가 아직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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