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제보자 "경찰 무심한 답변에 음란물 공유 뛰어들었다"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 2020.03.30 14:54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0325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신고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사이버수사대에 문의하세요"

n번방이 생겨나기 시작한 지난해 3월, 그 흉악함을 파악한 제보자 A씨가 이를 경찰에 신고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관련 내용이 담긴 사진과 함께 "엄청난 성범죄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고 112문자를 보냈지만 경찰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경찰의 안일한 초기 대응과 늦장 수사가 n번방 디지털 성범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 앞에서도 '내 일 아니다'는 사무적인 태도가 결국 수많은 n번방과 '박사방' 등 추가 범죄로 이어졌다.



"이 나라는 원래 그런 건가"


30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A씨는 "경찰의 무심한 답변이 들려와 실망했고 '이 나라는 원래 성범죄를 안 잡나'라는 생각에 세계관 혼란이 왔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큰일이 벌어졌는데 경찰은 수사를 왜 바로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면서 "냉담한 경찰의 반응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용기를 냈지만 좌절되자 A씨는 생각이 달라졌다. 본인 스스로도 아동·청소년음란물(아청물)을 소지하고 있었다. 수사 의뢰를 하면 정작 본인이 잡힌다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오히려 신고해도 별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닫자 본인이 음란물 공유방을 만들어 6개월간 운영했다. 해당 채팅방에만 사람이 4000명, 자료는 4만 개에 달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경찰에 잡혔고 그 이후 수사를 돕는 내부고발자가 됐다.

A씨는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나도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에 음란물 공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무신경한 대처가 범죄를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박사방' 막을 수 있었을까…"지금이라도 절차 수립하고 통계 모아야"


미성년자 등 여성 70여 명을 협박해 성 착취를 일삼아온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박사'로 불린 핵심 피의자 조주빈 씨(25)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당초 정부는 지난 2018년 말 웹하드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법 음란물 단속과 처벌에 나섰다.

단속을 피해 텔레그램에서 n번방 등 신종 디지털 성범죄 채팅방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초다. 이후 n번방은 빠르게 규모를 키웠다.

n번방을 기웃거리던 '박사' 조주빈이 박사방을 만든 시점은 지난해 9월이다. 같은 달 텔레그램 성 착취 문제를 취재하던 '추적단 불꽃'이 n번방의 실태를 외부에 이미 알리기 시작했다.

음란물 단속과 처벌에 나섰던 경찰 앞에 이미 여러 차례 경고음이 울린 셈이다. 당국이 지난해 3월 신고를 받고 제대로 된 초기 대응을 했더라면 추가 피해자 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차례 관련 제보가 있었음에도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신고를 처음 받은 경찰서에서 사실 텔레그램 수사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전문 인력인 사이버수사대에 넘기면 되는 쉬운 일인데 이게 잘 안됐다"고 평가했다.

오 교수는 추후 범죄 예방을 위해 지금이라도 관련 체계 정비가 늦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관련 신고를 상부로 '이첩하라'는 공문 하나만 있으면 해결됐을 것"이라면서 "사이버 성범죄 수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라도 관련 절차를 수립하고 범죄 통계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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