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쿠신문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1929년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關) 출신의 재일(在日)조선인 2세로서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다음날인 1945년 8월7일 고베(神戶)에 갔다가 귀가하는 길에 히로시마를 지나면서 피폭됐다.
이후 고인은 1975년 8월 재일조선인 최초의 피폭자 단체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를 결성해 일본인 피폭자 단체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 등과 함께 '피폭자 원호법'(2차 대전 당시 피폭자들에 대한 무상진료·수당지급 등을 규정한 일본 법령) 제정운동을 벌였다.
또 그는 북한에 거주하는 피폭자 실태조사 및 지원활동을 위해 10여 차례 북한을 다녀왔으며, 2006년 제1차 핵실험 땐 "난 피폭자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런 핵무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수년 간 고령을 이유로 외부활동을 자제해왔던 고인은 25일 오후 5시30분쯤 히로시마시에서 신부전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호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 이사장은 고인이 "최근 1년 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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