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메신저의 성착취·학대 범죄와 관련해 운영자뿐만 아니라 참여자들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이 24일 '박사'로 통칭되는 'n번방 사건' 핵심 피의자 조주빈(25)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이미 언론에서 조주빈의 일부 신상과 사진을 공개한 만큼 최대 26만명으로 추산되는 n번방 접속자 전원의 신상 공개도 마저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박사방' 운영자와 참여자 수사와 신상 공개를 요청한 국민청원 5건에 대한 답변을 통해 "'박사방'의 조력자, 영상 제작자 뿐만 아니라 회원으로 가입해 영상을 유포한 자 등 참여자 전원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해 전모를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
"친하고 친절했던 지인도 n번방 했을까 소름 돋아요."━
그러나 모습은 장애인 시설 봉사활동까지 다닌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 학보사에서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며 글쓰기를 즐겼고, 4학기 중 3학기 평균학점도 4.0으로 우수한 편이었다.
조주빈의 '이중생활'이 알려지면서 "지인 중 '제2의 조주빈'이 있을까 두렵다"는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박사방을 포함한 'n번방' 이용자는 10만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대표는 지난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인터뷰에서 "100여개에 달하는 방 회원 숫자를 적어놓고 단순 합산했을 때 26만명 정도 나왔다"며 "최대 규모의 방이 3만명이라고 했을 때 (중복을 감안해도) 아마도 10만명은 넘는 숫자, 혹은 거기에 달하는 숫자이지 않을까 추산된다"고 말했다.
회원이 26만명이라면 한국 남성 인구(2590만여명) 대비 100명 중 1명꼴이다. 회사원 장모씨(31)는 "26만이 물론 허수일수도 있겠지만 '100명 중 1명꼴'이란 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적어도 내 지인 중 한두 명은 있다는 얘기"라며 "친한 남자 사람 친구나 아는 오빠·동생들이 그 방에 있었다고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특히 지인의 사진을 나체에 합성하거나 실제 지인 사진을 유포하는 이른바 '지인 능욕' 등도 일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또 다른 공분의 대상이다. 대학생 김모씨(23)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셀카를 자주 올리는데 'n번방'에서 지인 능욕이 이뤄졌다는 얘기를 듣고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
누가 'n번방'을 이용하나…전문가들도 "일상에선 구분 못할 것"━
프로파일러이기도 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온라인 범죄자들은 절도, 폭행 등의 전과가 많은 범죄자들과 달리 가족들도 범죄 사실을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거나 직장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익명의 공간에서 범죄로 발현됐을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표 의원은 "음주 폭력과 비슷하다"며 "술 먹고 그동안 억눌린 본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 열등감이나 불만 등이 익명성을 매개로 발산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박사방은 단계별로 나뉘어 더 상위 등급 방으로 올라가려면 더 격하게 동조하고 참여가 강화돼야 했다"며 "(n번방 이용자들이)사회에서 갖지 못했던 공동체 의식이나 유대를 비뚤어진 행동을 통해 느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주빈이 현실에서 누리지 못한 권력에 심취했을 것이란 진단도 나왔다. 박 교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개인정보가 핵심인데 조주빈이 그걸 다 갖고 신고도 못하게 막은 데다 돈벌이까지 되니까 무서울 게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빈은 스스로를 '텔레그램에 빛나는 단 하나의 별'이라고 칭해 왔다.
━
"피해 공론화와 일탈 행위 신고 자유로운 문화 형성이 숙제"━
수사기관은 이용자 명단을 최대한 확보해 '공범'으로 처벌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회원 가입만 했거나 불법 영상물을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할 계획이다. 경찰도 텔레그램 외 다른 메신저 성범죄 수사와 함께 'n번방''박사방' 등의 단순 영상 시청자도 최대한 수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현행법상으로도 'n번방' 이용자 전원의 신상 공개가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용자들도 처벌 시 성범죄 신상등록제도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n번방' 이용은 가상화폐 등으로 대가를 지불한 구조인 만큼, 단순 시청 혐의보다 더 적극적인 범죄 의지로 볼 수 있다.
박미랑 교수는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 비밀방 안에서 자기들끼리 킥킥대는 일탈이 아니라 엄연히 범죄"라며 "이 사건은 일탈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의 전쟁인 만큼 신고를 같이 해줄 수 있는 사회적 의식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