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짤렸어?” 엄마의 의심… ‘3주 재택근무’ 생존기

머니투데이 구단비 인턴기자 | 2020.03.22 06:05

#출퇴근왕복3시간 #캥거루족 #인턴기자 #재택근무체험기

지난달 28일부터 재택근무 사무실이 된 내 책상. 고작 두 뼘 거리에 침대가 있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사무용 의자에 잘 앉아 있어야 한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내일부터 출근 안 해" "왜? 너 짤렸어?" "아니, 재택근무하래" "그냥 짤린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갑작스러운 재택근무는 어머니의 해고 걱정으로 출발했다. 근무 8개월 차,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내게 재택근무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다만 '직장인들의 로망'인 재택근무가 내게도 현실이 되다니. 좀처럼 믿기질 않았다. 여전히 회사 출근 중인 지인들은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재택근무는 그렇게 시작됐다.
근무 시간이 아닌 여유 시간에 가족과 함께 퍼즐 맞추기와 루미큐브 게임을 했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어색함도 잠시, 재택근무의 참맛이 금세 찾아왔다. 왕복 3시간 가량 소요됐던 출퇴근으로부터의 해방이 컸다. 기상 시간이 1시간30분 늦춰졌고, 일을 마친 후에도 지하철·버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곧바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여유 시간엔 가족과 머리를 맞대고 1000조각 퍼즐 맞추기, 작은 스티커들을 붙여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는 스티커 컬러링, 고전 보드게임 중 하나인 루미큐브 등을 즐겼다. 깜빡하고 영상을 못 남겨 아쉽지만, 1000번 휘저어 만든다는 '달고나 커피'도 만들었다. 실시간 검색어의 온갖 심리테스트도 모조리 경험했다.


집에 있는데…"집에 가고 싶다"


왼쪽은 사진 촬영을 위해 차려먹은 점심. 평소엔 오른쪽처럼 냉동식품을 대충 데워서 먹는다. 해시브라운 위에 웃는 모습을 그려보려 했으나 실패했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재택근무 3주 차, 가장 큰 단점을 발견했다. 밖에서 해결해왔던 식사를 집에서 챙겨 먹는 게 이렇게 귀찮을지 몰랐다. '어느 식당을 갈까' 고민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가족과 함께 생활한 덕택에 밥과 밑반찬은 늘 준비돼 있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엔 알아서 끼니를 챙경야 했다. 다 큰 어른이 '밥 차려달라'고 떼쓰는 건 너무 한심하니까. 주어진 한 시간 내 점심을 차리고,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기는 빠듯했다. 출근을 했다면, 밥을 먹고 커피까지 여유롭게 마실 수 있었을 터. 볕 좋은 날, 회사 근처 청계천에서 가벼운 산책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퇴근한 기분이 전혀 나질 않았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 뒤 바깥 일은 현관 밖에 두고 들어왔던 개운함이 사라졌다. 같은 처지의 재택근무 중인 선배들도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공감했다.
퇴근 후 청소기를 돌려줘야 집주인에게 사랑을 받으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가끔 화장실 청소는 덤이다. 양심고백을 하자면 깨끗해 보이려고 밝기를 조금 올렸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눈칫밥도 늘었다. 재택근무 전날부터 열심히 화장실 청소를 하며 집주인(어머니)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재택근무하면 집에서 점심 먹겠네. 식비를 좀 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이 문득 섬뜩했다. 애써 못 들은척 웃어 넘겼다.

퇴근 후엔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돌아올 집주인을 기다렸다. 영락없는 '도비(영화 해리포터 속 나오는 집 노예)'였다.



퇴근 기분 내는 '3가지 방법' 공유합니다


문 앞에 붙여둔 근무시간 안내표. 출퇴근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이른 편이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퇴근 기분을 만끽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완벽하진 않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출퇴근 기분을 내는 소소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1) 업무용 복장 갈아입기
먼저 업무용 복장을 따로 준비한다. 잠옷에서 업무용 복장으로 갈아입고, 업무가 끝나면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으면서 퇴근 후 슬랙스를 벗어 던지던 쾌감을 떠올린다. 이러나저러나 같은 '홈웨어 to 홈웨어'지만, 왠지 느낌이 다르다.

2) 방문 앞 근무시간 붙여두기
가족들이 근무시간에 "10시에 마스크 선착순 판매라는데 좀 사다줘" "지금 나가는데 설거지 좀 해 놔" 등의 부탁을 하거나, 잡담을 시도하면 난감하다. 그래서 문 앞에 근무시간과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적어뒀다. 사실 이건 '이 시간 동안은 일에만 집중한다'는 내 다짐이기도 하다. '침대가 폭신해 보인다' '보일러를 세게 틀고 따뜻한 방바닥에 눕고 싶다'는 욕망은 이겨내야 한다.

3) 집중 안 될 땐 뉴에이지 듣기
'사회적 거리 두기' 중인 윗집 아이들의 층간소음, 밥먹고 TV보는 가족의 생활소음이 참기 힘들 때면 음악이 필요하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안 된다. 클래식이나 뉴에이지가 좋다. 가사없는 MR을 틀었다간 코인노래방을 내 방으로 소환한다. 절대 경험담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없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원하며…


답답해서 나선 산책. 인적 드문 길을 마스크 끼고 걸었다. 지나가는 개에게 인사했지만 무시당했다./사진=구단비 인턴기자
때론 인적 드문 동네 뒷길을 산책했다. 하루 100보도 걷지 않는다는 스마트폰의 경고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천생 '집순이'인 나도 슬슬 집이 답답해지고 있어서다. 직장에선 사람들과 눈 인사라도 주고받았는데, 근무 시간 내내 말 한 마디 못하는 건 고역이다. 길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인사를 건네니 외로움이 덜해졌다.

직장인의 로망인 '재택근무'는 장점도 많지만,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괴로움과 메신저로 모든 업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불편함 등은 큰 단점이다. 기사가 잘 안 풀릴 땐 선배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말로 건네던 시절이 그립다. 지난주 단 하루 출근해 선배들을 만났을 때 왜 이리 반갑던지.

모두에게 코로나19 없는 평범한 일상이 필요할 때다. 확진·사망 등의 안타까운 소식보단 완쾌·퇴원·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등의 반가운 기사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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