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의결권자문사들은 왜 조원태 회장 손을 들어줬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안정준 기자 | 2020.03.14 21:18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이기범 기자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 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의 경영권 분쟁 대결구도가 조원태 회장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모습이다. 오는 27일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의결권 자문기구들의 권고가 속속 '조원태 지지' 쪽으로 쏠리고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주총 표대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국민연금은 물론 한진칼 주식을 보유한 다른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까지 주총에서 조 회장에게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14일 세계 최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등에 따르면 이 기구는 회원사들에게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 연임을 찬성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ISS는 구체적으로 한진칼 주총 상정 의안 중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은 물론 또 새로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된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CFO)의 이사 선임에 대해 회원사들에게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이같은 권고는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져 실제로 오는 27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 표 대결에서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중 조 회장 지지표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은 한진칼 주총의 표 대결 입장을 정하기 위해 ISS 권고 내용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ISS의 이번 권고내용은 실제 주총 표대결에서 외국인 투자자 상당수는 조 회장에게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을 굳힌다.

ISS만 조 회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앞선 13일엔 국민연금의 대표적 의결권 자문사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도 조 회장의 한진칼 이사 선임에 '찬성' 권고를 내렸다. KCGS는 반면 조현아 전 부사장이 주축이 된 3자 연합(조현아 KCGI 반도건설) 측 이사 후보에 대해서는 '불행사'를 권고했다. 조 전 부사장 측 3자 연합에게 반대표를 던지고, 조 회장에게 찬성표를 내라는 권고다.



헤지펀드 수호자 ISS, 조원태 회장 '찬성'의 의미


워렌 첸 ISS 아시아담당 이사 인터뷰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지금까지 한진그룹 '남매의 난' 경영권 분쟁은 조원태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막내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이 조 회장 편에 서고, KCGI와 반도건설은 조현아 전 부사장 편에 서서 진행됐다. 의결권 있는 지분을 기준으로 조 회장 측은 33.5% 안팎, 조현아 3자연합이 32% 안팎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며, 조 회장이 불안한(?) 우세를 보였다.

대한항공과 오랜 협력 관계를 보인 카카오(2.0%)와 GS칼텍스(0.25%), 또다른 재계 주요 기업들이 조 회장의 우군으로 나섰지만 의결권 기준 면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의결권 행사 지분 2.9%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유력한 캐스팅보트로 꼽혔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 격인 기금운용위원회 아래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결정 내용대로 한진칼 주총에서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기로 정했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방침을 정한 상황에서 ISS와 KCGS 같은 공신력 있는 외부 의결권자문사들이 속속 '조 회장 지지' 권고 내용을 내놓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ISS의 판단은 항공업계는 물론 자본시장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ISS는 그간 '헤지펀드에 우호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 경영권을 뺏으려는 3자 연합 측 헤지펀드인 KCGI(강성부펀드)에 기울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조 회장 지지' 쪽이었다.

글로벌 자본시장 선진국들은 한국 자본시장에 대해 "적대적 M&A가 어렵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해 왔다. 이런 부분까지 감안할 때 ISS가 KCGI가 아닌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은 조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에 최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헤지펀드 편을 자주 들어주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 ISS마저 등을 돌리면서 조 전 부사장 측은 한층 코너에 몰린 상황이 됐다.



이들은 왜 조원태의 손을 들었나



그렇다면 ISS와 KCGI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한 금융업계 전문가는 "KCGI와 반도건설 연합이 '땅콩회항'의 당사자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을 잡은 판단이 결정적 악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명분을 포기한 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의결권 자문사들의 구체적인 권고 내용을 주목한다. ISS는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찬성을, 하은용 부사장의 신규 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찬성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경험과 경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조 회장 측이 사외이사로 추천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박영석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최윤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대해서도 전폭적으로 찬성을 보냈다.

그렇다고 ISS 권고내용이 지나치게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아니다. 큰 방향은 조 회장 지지였지만 조 회장 측이 후보로 꼽은 임춘수 마이다스PE 대표와 이동명 법무법인 처음 대표변호사에 대해서는 "경험이 중복되는 후보자"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ISS는 조 회장 측 이사 후보를 찬성하는 이유도, 반대하는 이유도 모두 '경험'을 내세운 셈이다.

반면 ISS는 조현아 전 부사장 측 후보들에 대해서는 사내이사로 추천된 김신배 전 SK 부회장(포스코 이사회 의장) 1명에 대해서만 찬성의견을 냈다. 나머지 사내외이사 후보 전원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 의견을 밝혔다.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항공사 경영을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3자 연합이 명분과 경영능력을 모두 놓친 반면 조 회장 측은 능력있는 사내외이사진 구성과 지배구조 및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주총 안건으로 확실히 명분을 다졌다.

특히 사내외 안팎의 지지를 착실히 확보한 것도 눈길을 끈다. 대한항공 노조는 이례적으로 총수의 손을 들어주고 연일 "회사를 흔들지 말라"며 조 전 부사장 측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노조가 직접 소액주주 규합에 나선 것도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사내보험…캐스팅보트의 판단은




국민연금과 함께 또 다른 유력 캐스팅보트 격인 대한항공 사우회(한진칼 지분 1.23% 보유)는 물론 대한항공 자가보험(2.47%) 등도 조 회장 편에 설 가능성이 확실시 된다.

조 전 부사장 측이 사우회와 자가보험 지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인용'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이미 사우회와 자가보험 측은 직원들의 개별 입장을 전자투표로 검증한 뒤 주총 표대결에서 그에 따라 찬성하는 쪽을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의 주총 의결권 행사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전문가는 "사우회와 자가보험의 3.7% 지분과 국민연금 지분 2.9%가 최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코로나19로 사상 최대 위기에 빠진 대한항공의 상황으로 볼 때도 누가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는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남은 변수는 있다. 국민연금은 이전 사례를 볼 때 27일 주총 직전에야 의결권 행사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 유력 의결권 자문사들이 연이어 조 회장 손을 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또 다른 의결권 자문사의 입장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조 회장 측 주총 제안 내용과 조 전 부사장 측 제안 내용이 워낙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서스틴베스트·대신지배구조연구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등 아직 주총 권고 내용을 밝히지 않는 의결권 자문사들도 권고의 큰 방향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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