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사외이사 후보로 지명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10일 "한진칼 사외이사가 되면 어떤 개선책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대답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다른 질문에도 일절 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그때 행동으로 개선책을 보여주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말만 휘황하게 늘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진칼은 오는 27일 그룹 경영권이 걸린 운명의 주총을 연다. 이 주총은 조원태 회장 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진영이 나뉘어 지배구조 개선 의지와 경영 능력을 함께 심판받는 중대한 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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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반장' 김석동, 한진그룹 급한 불도 함께 끈다━
지난 4일 한진칼 사외이사 후보진 명단이 공개되는 순간까지 김 전 위원장은 이를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막판까지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로 나서는 것을 고민하던 김 전 위원장을 사외이사 추천위원회가 간곡히 설득해 후보 지명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만큼 '남매의 난'으로 불리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원태 회장은 친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 측 3자 연합(KCGI·반도건설)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조 회장 측 사외이사 추천위원회가 뽑은 김석동 카드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가느냐에 따라 국민연금처럼 캐스팅보트를 쥔 주주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은 별명은 '대책반장'이다. 국가 경제에 비상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서 급한 불을 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위기탈출을 진두지휘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친화력 있는 리더십도 정평이 났다. 안팎의 난기류를 만난 한진그룹으로서는 최적의 사외이사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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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중량감', 거수기 그치지 않을 듯━
이 때문에 조 회장 측 사외이사들이 단순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앞으로 한진그룹 경영진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정부 실세(?)로 정부 경제라인의 큰 그림을 설계했다는 점도 김 전 위원장의 역할론에 기대를 갖게 한다. 김 전 위원장이 최근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으로 내정됐지만 고사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한 금융사 CEO는 "김 전 위원장의 행보는 현 정부가 관심을 보일 정도로 무게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 전 위원장 역할이 사외이사에 그치지 않을 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진그룹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한진칼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될 가능성이 높다. 사외이사 위원회의 주요 안건은 경영진이 정하지만 최종 결정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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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대리전, 어떻게 결론 날까━
이력과 능력 면에서 조원태 회장 측 이사진 후보들이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 회장 측은 김 전 위원장 외에도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을 대한항공 사외이사 후보로 영입하고,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했다. 기존 경영진의 전문성에 객관적 감시를 더하겠다는 포석이다.
한편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부터 한진칼 이사회 의장 후보로 지명된 김신배 전 부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이 2000년 파산에 직면했던 일본항공(JAL) 경영을 맡아 적자의 늪에서 구해냈다"고 밝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시 이나모리 회장은 JAL 경영을 맡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김신배 전 부회장의 발언은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김신배 후보의 이 발언은 인적 구조조정이 없다고 노조에 강조해 온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의 본심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일 수 있다"며 "이나모리 회장의 JAL 구조조정 사실을 모르는 전문성 부족을 보여주는 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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