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전자기업 A사의 해외영업팀 관계자는 26일 북미 지역에서 날라온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주 방한하기로 약속한 바이어가 코로나19(COVID-19) 감염증 사태를 이유로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상당히 큰 계약 건이어서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기술 미팅까지 하기로 했는데 계약이 불투명하게 됐다"며 "다음 날짜를 잡자고 했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만 답해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내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1200명을 넘어서고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가 한국 여행 자제 조치를 내리면서 기업들이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해외 비즈니스가 얼어붙어 수출 전선이 이상기류에 휩싸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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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우한' 된 한국…"중국 바이어들도 방한 꺼려"━
정유업계의 B사 관계자는 "국내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 입국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중국 바이어조차 대면 미팅을 피하고 전화로만 상담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화 상담만으로는 중요 계약 결정이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신규 판로 개척이나 계약 수주에서 현장 실사나 대면 미팅은 여전히 피할 수 없는 비즈니스 수단이다. 특히 시장이 갓 열린 자동차 전장(전자장비)부품이나 로봇 부문에서는 국내 업체들의 수주 경험이 많지 않아 공장 실사나 기술 미팅이 계약 성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 한 로봇업체 임원은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을 중에 을'인데 한국업체라고 하면 코로나19 때문에 퇴짜를 맞을까 걱정이 크다"며 "올해 해외영업은 현재까지 올스톱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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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만기 돌아오는데"…계약 지연에 자금회전 골머리━
우리 기업이 해외로 나가 영업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동통신업계는 세계 최대 전시회인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취소로 무산된 비스니스 미팅을 실무진 해외출장으로 대체하려고 하지만 해외 사업 파트너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계약 성사 직전의 바이어 미팅이 무산되면서 자금회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화학업체 C사 관계자는 "대면 미팅의 경우 현장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어 확신을 갖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해외 바이어들이 만나주질 않아 계약 추진이 안 되고 있다"며 "시간이 돈인 시장에서 그만큼 기회비용과 리스크가 커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수도권지역 설비부품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3월 말부터 3000만원의 어음만기가 돌아오는데 지금 추진하는 해외 계약이 무산되면 당장 현금이 없어 큰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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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 중기업계…"두세달이나 버틸 수 있을지"━
부산의 생활용품업체 D사는 10번의 도전 끝에 해외 바이어 방한을 성사시켰지만 코로나19로 상대방이 일정을 연기하며 계약 추진 자체가 무산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1년 넘게 공들인 계약이 물 건너갈 수 있어서 답답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한국을 방문해도 되느냐는 해외 바이어 문의에 솔직히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기업계 관계자는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가운데 코로나19 국면까지 겹치면서 설상가상인 상황"이라며 "이 국면이 2~3개월만 계속되면 중소기업들이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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