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마지막 응시인데…" 코로나19로 불꺼진 '취업시장'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20.02.25 17:13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단대사대부고에서 진행된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GSAT)를 마친 취업 준비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올해가 삼수째인데 하필 코로나가…" (취업준비생 김모씨)
"글로벌 인재, 바로 뽑아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A그룹 인사팀 관계자)

코로나19(COVID-19) 감염증 사태로 취업의 큰 문이 굳게 닫혔다. 기업설명회나 필기시험, 면접처럼 한 장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채 일정을 현재로선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취업자수를 25만명 늘리고 고용률 목표치를 67.1%로 높이겠다는 정부는 코로나19의 창궐만 지켜보는 상황이다.



LG 미국 채용설명회 취소…공채 연기 가능성


25일 LG그룹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2012년부터 8년간 빠짐없이 해왔던 미국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대상 'LG 테크컨퍼런스'를 올해는 하지 않는다.

LG그룹이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해 교두보로 삼았던 행사다. 고 구본무 회장이 직접 지휘해 행사를 창안했고 아들 구광모 회장도 지난해 첫 일정으로 행사장을 찾았을 정도지만 올해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LG 관계자는 "'LG 테크 컨퍼런스'는 수백명의 석·박사급 인재들이 한데 모여 만찬까지 하는 채용 행사여서 이공계 유학생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며 "올해는 참석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LG그룹은 코로나19 추이에 따라 올해 신입사원 공채 일정도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늦춘 4월 이후에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도 신입 면접 연기…삼성·SK·GS 검토


현대차 홈페이지 캡처.
현대자동차도 전날부터 진행할 예정이었던 신입사원 채용 면접을 무기한 연기했다. 지난해부터 수시 채용을 도입하면서 올초 신입채용 서류전형은 마쳤고 직무별로 면접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연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홈페이지에 3급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를 내달 7일로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원래 지난 15일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나흘 전 긴급 변경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대졸 신입 공채 일정까지 미룰지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지만 현재 분위기는 연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SK그룹과 GS그룹도 계열사별 채용 일정을 연기하거나 재고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10대 그룹 중 상반기 공채 일정을 정확히 밝힌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24개 대학에서 진행했던 캠퍼스 리쿠르팅을 올해에는 대폭 축소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코로나 전형' 하소연…"무채용이 더 두려워"


코로나19로 채용시장이 얼어붙으며 당장 불안에 떠는 이들은 당연히 취준생이다. 기업 공채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올 상반기 채용계획이 아예 물 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린다.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코로나19도 무섭지만 무(無)채용이 더 무섭다"는 한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대기업이 이런 상황인데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채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 기업들도 대부분 채용을 미룰 방침이어서 올해 채용은 유례가 없는 '일정 겹치기' 채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취준생 김한진씨(30)는 "올 추석은 꼭 직장인으로 맞고 싶었는데 상반기 채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어 솔직히 너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인재 입도선매는 못할망정" 기업도 막막


기업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인재 유치전에서 인재는 곧 미래 성장동력과 직결된다. 매년 고급 교육기관에서 배출되는 2만여명을 놓고 국경을 넘은 쟁탈전이 벌어지는 이유다.

LG그룹이 LG 테크컨퍼런스 미국 개최를 취소하면서도 계열사별로 석·박사급 인재 유치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올해까지 국내외 R&D(연구개발) 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이에 차질이 생길까 비상이 걸렸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고급 인재를 고르는 게 아니라 고급 인재가 기업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채용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한번 기회를 날리는 것 이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채용 중단이 중장기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대로 가면 올 고용목표 차질 불가피


고용에 앞장 서야 하는 정부도 난처하다. 지난해 12월 고용률이 2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정부는 올해 고용 통계가 어느 해보다 좋을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채용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올해 채용계획이 있는 기업들은 고용시장이 위축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러나 당부 차원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소비심리 위축이나 감염자 방문으로 휴업을 한 사업장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매출액 15% 감소 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업체까지 고용 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주로 인정해 인건비를 주고 있다. 이런 실질적 지원책을 기업 채용 분야에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기획재정부는 추가 경정 예산에 고용 진작을 위한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불꺼진 고용시장은 아예 살아나기 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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