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언제까지 급소만 찔릴 것인가

머니투데이 양영권 경제부장 | 2020.02.12 05:00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사태로 인해 중국산 자동차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서 현대자동차 공장이 휴업에 들어간 7일 오전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명촌정문 인근 한 미용실 입구에 7일부터 11일까지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7일부터 모든 생산을 중단해 11일 까지 휴업에 돌입한다. 2020.2.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해 7월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했다.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이들 품목을 수출 절차 우대 조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 분명한 이같은 조치가 나오자 ‘한국 산업의 급소를 찔렀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이 소재 재고가 떨어져 한 달 내에 가동을 멈출 수도 있다는 전망이 퍼졌다. 다행히 기업들이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는 등 ‘탈일본화’에 나서고, 일본이 규제를 비공식적으로 완화하면서 국내 첨단산업에 대한 영향은 미풍에 그쳤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지난 7일 현대자동차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터졌다.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처럼 첨단 소재가 아니라 와이어링 하니스라는 차량 배선뭉치 때문이다. 이 부품은 배선을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꼬고 연결해야 한다.

인건비 때문에 국내 협력업체들이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했는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중국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공급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알고보니 와이어링 하니스도 우리 산업의 급소였다.

국내 1,2위 기업집단에 닥쳤던 두 사태는 우리 산업이 외부적인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정학, 보건 등의 변수에 당장이라도 멈춰 설 준비가 돼 있는 게 우리 산업 현장이다.

일차적으로 정치적 목적에 경제를 끌어들인 일본과 바이러스 방어를 못한 중국에 책임을 돌리고, 이차적으로는 부품소재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고 공급지 다변화를 해 놓지 않은 기업을 탓한다. 하지만 그런 추궁으로만 끝난다면 유사한 사태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포토 레지스트의 경험은 와이어링 하니스 사태를 막지 못했다.

취약한 고리를 진단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보강하는 정책을 펴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 정책은 튀어나오는 문제를 망치로 두드리는 두더지잡기에 머물렀다.


소재·부품 개발에 쓰일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율은 2015년까지 총예산 증가율을 앞질렀지만, 2016년 반전했다. 2016년 총 예산이 2.9% 증가할 때 R&D 예산은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R&D 예산 증가율은 2017년 1.9%, 2018년엔 1.1%로 미미했다. 2019년 들어 4.4%를 나타냈지만 총예산 증가율 9.5%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겪고 나서야 부랴부랴 올해 R&D 예산을 17.3% 증액한다.

노동집약적 산업 이탈을 가속화하는 정책을 편 것도 정부다. 최저임금을 2018년 16.4%, 지난해 10.9%에 인상한 것이나 주52시간 근무제를 서둘러 시행한 게 그것이다.

경영이 힘들다는 아우성에는 “최저임금도 못 줄 정도면 문 닫아라”라는 조소가 뒤따랐다. 결국 자영업자,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불만 여론이 고조되자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2.9%로 낮추고, 주52시간제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노동집약적 산업이 자리를 붙일 수 없게 되고, 산업생태계 균열은 더 커진 뒤였다.

정부의 실책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지만, 정부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알리바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차 셧다운 사태가 닥치자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등 고위 관계자들이 기업 현장을 방문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그게 정부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니다.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면 제2, 제3의 공장가동 중단 사태는 터질 것이다. 두더지는 때려 넣어도 옆에서 "약오르지"하며 또 나온다. 정부의 역할이 사고가 터진 뒤 불을 끄고 수습하는 일에 그친다면 소방청 외에 필요한 기관은 없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가 퍼지는 속도는 바이러스 확산 속도보다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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