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감각적 쾌락을 목표로 하는 쾌락적인 삶, 명예를 얻거나 어떤 일에서 뛰어남을 인정받는 정치적인 삶,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관조하는 삶이다. 이 중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이 관조하는 삶이다. 관조(theoria)는 그리스어로 ‘테오리아’라고 하는데, 영어 이론(theory)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육체적 감각을 만족시키려는 쾌락적인 삶은 매우 일시적이기 때문에 만족감이 사라지면 허탈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삶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존해 늘 속박된 상태이므로 자유롭지 못하고 불완전하다. 반면 관조하는 삶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이지 않고 속박되어 있지도 않아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이라고 보았다.
그런데도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근거와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닌 ‘나는 보여진다. 고로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나은 것, 좋은 것,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경쟁사회로 우리가 상대적 빈곤을 경험할 때마다 허상을 꿈꾸며 허무함을 증가시키는 삶, 불안한 삶을 살게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심는 대로 거둔다’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불변하는 세상의 순리를 따르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질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에 자족할 때 우리가 소유한 것이 실제로 적다하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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