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치판으로 향하는 판사들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 2020.0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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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주주 또는 최고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계열회사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고자 준법감시실을 신설했다. 또 준법감시의 정도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기업의 준법감시 업무를 수행할 '준법감시인'과 위임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22일 오후에 열린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기일. 주문을 낭독하던 재판장이 "피고인(이 회장)에게 정상 참작의 요지"를 읊었다. 재판장은 회삿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수천억 원대 배임과 횡령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회장은 보석이 취소되면서 법정구속됐다. 다만, 형량은 1심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이날 양형 참작 사유로 '준법감시 노력'을 언급한 재판장은 다름아닌 '이재용 재판부'의 정준영 부장판사다. 정 부장판사는 재판을 통해 처벌보다는 회복적 사법에 부합하는 심리와 판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복적 사법은 처벌보다는 피해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현 사법체계는 '수감'이라는 사회와의 차단을 통한 형벌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회복적 사법은 피고인과 피해자 사건의 주체와 사건 관계인까지 참여한 논의를 통해 범죄의 재발방지 및 교화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중범죄에 상습범은 교화보다는 징벌에 목적을 둘 수밖에 없겠지만 사법 판단이 교화를 통한 기능회복과 구제에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사법 형벌의 주요한 흐름이다.



시험적인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사법부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과 피해 구제를 위한 노력은 사법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받아들여지고 정착되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사법부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이런 노력 조차 폄하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사법농단으로 국민들의 실망을 산 사법부가 최근 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한 '편파 재판' 논란에 이어 최근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직 판사들이 잇따라 정치판으로 뛰어들고 있다. 심지어 사법부의 비리를 고발한 판사출신 변호인도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사법부가 진정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것인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떤 재판이든 찬성과 반대의견은 상존하기 마련이다. 다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갈등은 매듭지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 신뢰는 중립성을 가진 법관이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릴 때 가능해진다. 그 신뢰가 의심받는다면 이는 사법부를 넘어 국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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