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판결] '사법농단' 첫 판결, 유해용 "무죄"…왜?

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 2020.01.19 06:12

편집자주 | 법원에서는 하루 수십 건의 판결 선고가 이뤄집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담은 판결들도 많습니다. 따끈따끈한 이번 주 판결 중 가장 의미 있었던 판결 내용을 법원 출입 안기자가 자세히 설명해드립니다.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법정 안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전달 드리겠습니다.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지난 13일, 이른바 '사법농단'이라 불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첫 관련 판결이 나왔다. 양승태 대법원에서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했던 유해용(54·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변호사가 받는 혐의의 가장 큰 갈래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이 가진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는 혐의와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유 변호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재판연구관 박모씨에게 "청와대가 관심 있는 특정 재판 및 관련 재판의 진행경과, 처리계획 등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봤다. 청와대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고, 대신 각종 사법정책에 대한 협조를 받아 사법부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에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유 변호사가 박씨로 하여금 이 사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해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청와대에 이를 제공했다거나, 이에 대해 임 전 차장이 유 변호사와 공모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는 대법관이나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이 특정 사건을 문의할 때 사안요약 문건과 같은 양식의 보고서를 수차 만들어 보고했고 이 사건 문건을 그중 누구로부터 요청받았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작성 지시자가 유 변호사라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 문건이 대법원 내부 또는 유 변호사의 소지 문건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유 변호사를 통한 전달 과정에 대한 객관적 자료도 확보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임 전 차장의 법정 진술도 주요했다. 임 전 차장은 이 사건의 증인으로 나와 "유 변호사에게 이 사건 문건과 관련해 어떤 부탁을 했는지, 유 변호사로부터 이 문건을 받았는지 기억은 전혀 조금도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반면 검사에게 유리한 증거였던 임 전 차장과 유 변호사의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능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 조사 당시의 발언이 기록된 조서는 유 변호사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문건을 제시받고 '기억은 없는데 유 변호사로부터 이 문건을 받은 것을 보면 (내가 작성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 같다'고 진술하고, 또 '유 변호사가 검찰 조사에서 위 문건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이것을 임 전 차장에게 보내줬다고 하는데 맞나요' 라는 검사의 질문에 '예 그렇습니다' 라고 답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검찰 조사 때 발언들이 '심리적 압박감'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신문 당시 대법원과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의혹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어 대법원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을 지낸 유 변호사에 관련해 연일 많은 기사가 보도되고 있었고 사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었다"면서 "다수의 취재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포토라인을 통해 공개소환에 응한 유 변호사는 조사 당시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위축된 상태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서라는 것이 진술한 내용을 전부 그대로 기재하는 것이 아니고 진술한 대로 기재됐다는 것이 진술한 내용 전부 그대로 기재돼 있다는 것은 아니다"며 "검사의 집요한 추궁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답변 과정에서 피의자들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사진=뉴스1


유 변호사의 또 다른 혐의는 대법원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며 검토한 보고서 및 의견서 등을 사건 수임과 변론에 활용하기 위해 무단으로 들고나온 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것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다.

재판부는 이 보고서 및 의견서들이 애초 '공공기록물'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공공기록물법은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행정 구현을 위해 기록물을 국민에 널리 공개하는 것이 그 입법취지라 할 수 있는데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는 대법관의 심리 및 재판 업무 보조를 위해 작성하고 대법원 내부에서만 공유되는 것이다"며 재판연구관의 보고서 및 의견서가 공공기록물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또 유 변호사가 이것들을 들고나온 행위에 대해서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관이 업무를 수행하며 취득하게 된 파일은 보직이 변경되거나 하면 개인 정보저장매체에 저장해 둔 것을 새로운 근무지에 옮기고 이를 업무에 계속 참고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라며 "법관직을 사직하며 그동안 작성하거나 취득하게 된 파일이 저장돼 있던 외장하드를 그대로 가지고 나온 것을 두고 무단 유출의 범행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외 유 변호사가 받던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변호사법위반, 절도 혐의에 대해서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유 변호사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가 끝난 뒤 유 변호사는 법정 밖에서 취재진과 만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결해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도록 하겠다.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선고는 지난 2017년 3월6일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후 약 2년 만에 나온 첫 번째 판결이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남은 사법농단 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한편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72·2기) 전 대법원장 사건은 여전히 재판 진행이 더딘 상태다.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의심 진단까지 받으면서 내달 말까지 재판은 연기됐다.

또 사법농단 관련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 전 차장은 지난해 6월 낸 재판부 기피 신청 결론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의 본안 재판은 멈춰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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