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납세자 울리는 국회

머니투데이 원경희 한국세무사회 회장 | 2020.01.17 04:30
원경희 한국세무사회장 / 사진제공=한국세무사회
경자년 새해는 지난해 보다 더 많은 새해 인사를 나누며 시작했다. 새해 첫 날, 한국세무사회 직원들과 함께 시무식을 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회장실에 돌아와 새해 벽두부터 꼭 실천해야 할 일을 챙기고 있을 때 갑자기 문밖이 시끄러웠다. 한 젊은이의 목소리였다.

사연은 이렇다. 세무사시험에 합격하고 6개월의 세무사 직무교육도 받고 세무사 사무실을 열기위해 1년 간 막노동까지 했다고 한다. 겨우 돈을 모아 지방세무사회 사무실에 등록을 하려는데 할 수 없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그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원통함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세무사법은 만들어질 때부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세무사 자격을 공짜로 주는 제도였다. 태생적으로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사업에 대한 세무업무를 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회계학 공부는커녕 회계학 시험도 보지 않는 변호사들에게 국민들의 복잡한 세무회계를 처리하는 전문 세무사자격을 공짜로 줄 수 있는가.

그래서 2017년말에 변호사에게 공짜로 주는 법을 거의 60년만에 폐지시켰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는 변호사시험 합격자에게 세무사자격을 공짜로 주되 세무업무를 할 수 없었다. 이 당시 합격한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했다. 2008년에는 헌재가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이를 토대로 2012년 대법원에서도 합법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18년 4월에 헌재는 이를 뒤집고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세무사자격 보유 변호사에게 국회에서 허용할 업무와 허용하지 않을 업무를 구분해 2019년12월31일까지 입법을 보완토록 결정했다. 정부는 2018년에 바로 헌재의 결정취지대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세법 적용업무인 '세무조정업무'는 허용하고 변호사들이 전공하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은 순수회계업무인 '회계장부작성'과 '성실신고업무'는 허용하지 않는 세무사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법무부와 대한변협의 강력한 반대로 차관회의에 조차 상정하지 못했다.

이후 정부는 모든 업무를 허용하는 것으로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전국의 1만3000여 세무사들은 결사항전의 자세로 들불처럼 일어나 정부입법안에 반대했고, 결국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했다.


순수회계업무인 '회계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는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를 허용키로 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세무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29일 국회 기재위에서 의결돼 법사위에 회부됐다. 패스트트랙 파동으로 여야간 대치가 계속된 가운데 민생법안인 세무사법은 지난해 말까지 법사위에서 의결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고, 해당 법 조항은 무효가 됐다.

국회의원들이 보기엔 자격사간의 다툼으로 밖에 보일지 모른다. 세무사등록을 하여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생존의 문제이며 삶의 중대한 문제이다.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에는 세무사가 작성한 세무조정계산서를 첨부해야만 적법한 신고로 규정하고 있다. 세무사등록 조항이 무효가 됨에 따라 등록한 세무사가 없게 되고 당장 3월 법인세 신고와 5월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첨부해야 하는 세무조정계산서는 적법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납세자가 신고하는 법인세·소득세 신고는 무신고로 간주되며 이로 인해 선량한 납세자만 가산세를 물게 생겼다. 세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세무사의 세무전문성을 고려해 헌재의 결정 취지대로 기재위가 의결한 세무사법개정안을 이번 국회 법사위에서 하루빨리 의결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시켜 줘야 한다. 18명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300명의 국회의원님들께 부디 간청드린다. 꼭 통과시켜 주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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