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국열차]"널 믿었는데…" 샌더스-워런 금간 우정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 2020.01.19 13:00

['썰'푸는 국제부 기자들]
샌더스 "女, 대선 못이겨" 진위 논란
TV토론·지지자 트윗으로 불화 번져

편집자주 | 복잡한 국제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보려 합니다. 재미있는 '썰'을 풀듯이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시 드레이크대학교에서 CNN 주최로 열린 7차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후보 TV토론에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왼쪽)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다."

프레너미(Frenemy)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 적과 동지의 구분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 올해 미 대선을 앞두고 '프레너미'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후보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버몬트)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입니다.

오랜 우정과 동맹관계를 과시해왔던 둘은 최근 CNN 대선토론에서 맞붙을 만큼 갈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샌더스 의원의 지지자들이 워런 의원에게 인종차별적인 조롱을 일삼았다는 주장까지 나왔죠. 어쩌다 어제의 친구였던 그들은 오늘의 적이 됐을까요.


샌더스 "여성은 대통령 될 수 없다" 발언 진짜일까?


버니 샌더스 미 민주당 상원의원(버몬트). /사진=AFP
둘의 우정에 금이 간 계기는 바로 샌더스 의원이 1년여 전에 실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입니다. 샌더스 의원이 워런 의원에게 "여성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죠.

13일(이하 현지시간) CNN은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2018년 12월 워싱턴D.C.에 위치한 워런 상원의원의 자택에서 샌더스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같은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당시 두 의원은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적할 최적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워런 의원은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어야 할 근거를 설명했고, 이에 샌더스 의원은 "여자가 (대선을) 이길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것이죠.

이후 워런 의원이 "나는 여자가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샌더스는 동의하지 않았다"며 해당 발언을 사실로 확인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샌더스 의원은 "나는 그러한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습니다. 그는 이를 최초 보도한 CNN에 성명을 보내 "워런이 내게 대선 출마를 밝힌 자리에서 내가 여성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발끈했죠.

엘리자베스 워런 미 민주당 상원의원(매사추세츠)./사진=AFP
샌더스는 이러한 의혹 제기가 자신을 향한 음해 공작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불과 3주 앞둔 중요한 시기에 왜 1년여 전의 대화를 지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냐는 겁니다. 그는 "내가 그날 밤 한 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어떤 것도 무기화할 수 있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이튿날 열린 CNN 주최 민주당 경선후보 TV토론에서도 이어졌죠. 샌더스 의원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것에 대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도널드 트럼프와 일부 언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죠.

워런 의원은 샌더스를 향한 직접적인 비난은 피했지만, 문제된 발언에 대해선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같은 TV토론에서 워런 의원은 "버니는 내 친구고, 나는 여기 버니와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냐 없느냐의 질문이 던져진 만큼, 이제 우리가 이를 정면 돌파해야 할 때"라고 말했죠. 샌더스의 발언을 비롯해 민주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여성 대통령 회의론'을 겨냥한 듯 보입니다.



워런, 샌더스 악수 거절… 샌더스 지지자들, 트윗 테러·인종차별 조롱까지


악수를 청하는 샌더스 의원의 손을 거절하는 듯 보이는 워런 의원의 팔. /사진=CNN 영상 갈무리
그러나 "둘의 불화는 갈수록 더 흉해져(uglier) 갔습니다(CNN)". 이는 토론 이후 대화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샌더스 의원은 워런 의원에게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워런 의원은 이를 붙잡지 않았죠.

대화 내용에서도 서로에 대한 불편함과 적대감이 내비쳤습니다. CNN이 마이크 오디오를 통해 포착한 음성에 따르면 워런은 샌더스에게 "당신이 전국 방송에서 날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 같다"며 분노를 표했고, 이에 샌더스는 "지금은 이러지 말자"며 말리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후 샌더스 의원 역시 "당신(도)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했다"며 대화를 이으려다 "지금은 하지 말자"며 미루는 듯한 모습을 보였죠.

그러나 문제는 토론을 마치고 SNS에서 더욱 커졌습니다. 악수 거절 장면을 보고 격분한 샌더스 지지자들이 워런을 매섭게 비난했기 때문이죠. 이날 트위터에는 '워런은절대뽑지마라(#neverWarren)', '#거짓말쟁이리즈(#LyingLiz·리즈는 엘리자베스의 줄임말)', '뱀같은워런(#WarrenisaSnake)' 등의 해시태그와 뱀 이모티콘으로 워런을 저격하는 트윗이 쏟아졌습니다. 이들은 "친구의 발언을 꾸며내거나 곡해해서 말하고, 그 말에 집착하고, 악수를 거절하는 게 친구냐", "샌더스가 29년 전 공화당을 이기고 의석 하나를 얻을 때, 워런은 공화당이지 않았냐"며 비판을 이어갔죠.

워런 상원의원이 거짓말쟁이라며 비판하는 트윗. /사진=트위터
샌더스 캠프가 조직적으로 워런을 비난해왔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12일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일부 샌더스 선거운동원을 인용해 "워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민주당을 찍을 고학력층과 부유층에만 호소력이 있다"고 말하도록 지침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두고 워런은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고, 샌더스는 "우리 캠프에 사람들이 500명이 넘는다"며 "워런에게 부정적인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죠.

심지어는 인종차별성 공격까지 나왔습니다. 샌더스 지지자로 보이는 인물이 워런 지지자에게 "포카혼타스냐?(Pocahontas, huh?)"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가 캡쳐돼 트위터에 떠돌게 된 겁니다. '포카혼타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워런 의원이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이라는 주장을 비꼬기 위해 쓰던 단어입니다. 트럼프를 꾸준히 비판해오던 샌더스 측에서 어떻게 트럼프가 쓰던 조롱을 따라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를 두고 샌더스 캠프 측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샌더스 지지자인 척 위장해 문자를 보낸 것"이라며 "그 인물은 캠프에서 퇴출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양측 지지자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진 듯 보입니다.


진보 진영의 균열…대선 앞두고 단결 가능할까


워런 상원의원을 거짓말쟁이(liar)라며 조롱하는 합성 이미지. /사진=트위터
진보 진영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던 두 후보의 불화는 진영 내 균열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CNN은 "두 후보 중 한 명이 민주당 경선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이기려면 좌파로부터 거의 단일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며칠 전 샌더스와 워런이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피하고, 민주당 내 중도보수파인 바이든과 피터 부티지지 미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설전을 벌이는 데 집중할 때까지만 해도 가능성이 매우 있어 보였죠,

그러나 둘의 불화가 더욱 커지며 이러한 전망은 어두워졌습니다. CNN은 "TV토론 이후 샌더스 지지자들이 워런을 향해 단결한다는 것은 공상에 가까워 보인다"며 "발언 진위 논란은 진보 진영의 대표가 누가 되느냐, 그리고 누가 되든 좌파가 그를 위해 단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커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단 며칠만의 설전으로 수년간의 우정에 등을 돌리게 된 샌더스와 워런은 다시 동지가 될 수 있을까요? 트럼프에 대항하기 위해 단결을 외치던 이들이 과연 초심을 찾을지, 각자의 길을 가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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