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으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교수의 파면을 촉구한 학생을 학교 측이 뒤늦게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논란이다.
학생들은 정당한 투쟁으로 징계 절차가 부당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학교는 규정 위반을 이유로 징계절차를 진행 중이다. 징계위 회부 정당성을 놓고 학생과 학교 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전망이다.
서울대 권력형 성폭력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인권침해 특별위)는 16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는 전 서울대 인문대학생회장 이수빈의 징계위 회부를 당장 중단하고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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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 계속된 투쟁...'단식·침묵행진·총학생총회'━
A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터진 건 지난해 2월. 피해자였던 대학원생 김실비아씨(30)가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대자보에서 A교수가 2015년 2월 한 차례, 2017년 6월 두 차례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제자와 함께한 공동연구 논문을 베껴 자기표절을 하거나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빼돌렸다고 밝혔다.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던 이씨가 학생 대표로 전면에 나선 건 이때부터다.
이씨는 뜻을 같이하는 학생들을 모았고 학교와 교수 측에 제도 개선과 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고 변화가 없자 이씨는 지난해 4월 단식에 들어갔다.
15일 동안 물과 소금만 먹었더니 몸무게가 16kg이 빠졌다. 건강이 악화된 이씨는 결국 병원에 한동안 입원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는 스승의 날 침묵 행진, 전체 학생총회를 개최했다.
이씨는 "2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인 총학생총회에서 A교수 파면과 제도 개선을 의결했지만 학교는 무응답이 대부분이었다"며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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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A교수실 점거…학교, 5달 뒤 문제제기━
지난해 8월 A교수의 징계위 결과 발표를 앞두고 학교 측에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씨는 급기야 지난해 7월2일 학생들과 A교수 교수실을 점거했다.
이씨는 "당시 A교수의 교수실은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비폭력적으로 투쟁을 진행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성추행 혐의가 있는)교수가 발붙일 곳 없음을 강력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여일만에 학교 측의 재발 방지 약속 등을 받고 교수실 점거를 해제했다. A교수는 한 달 뒤 징계위 결과 해임 처분을 받았고, 지난해 12월에는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제가 일단락 되는 듯했지만 학교는 5달 뒤인 지난해 말 이씨를 징계위에 회부했다. 학생 징계절차에 관한 규정 2조4항인 '학교건물에 무단 침입하거나 점거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오는 23일 징계위에 출석한다.
이씨는 "평화로운 결론을 찾기 위해 학교 당국과 함께 끊임없이 논의했다"며 "도덕적인 공동체를 갈망하는 학생들의 정당하고 절박한 투쟁이었는데 안타깝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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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정당한 투쟁" vs 교수진 "신성한 교수실 점거 안돼" ━
A교수가 해임되고 재판에까지 넘겨졌음에도 학교 측이 뒤늦게 문제로 삼고 나선 배경엔 교수들의 입김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씨 등이 지난 7월 교수실을 점거했을 때 16개 서울대 단과대 학과장들은 "교수 연구실은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 기능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교수실 점거를 비판했다.
당시 점거에 나섰던 한 학생은 "특히 서어서문학과 교수들이 교수실 점거를 반대했다"며 "일부 교수들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서 학교 본부 측도 뒤늦게 문제를 삼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학생들은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권침해 특별위 관계자는 "학생대표자가 학생회칙에 의거해 학생회에서 의결된 사안을 이행하는 것이 징계 사유면 학생은 그 어떤 의사결정도 자유롭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시흥캠퍼스 반대 본부 점거 농성을 진행한 학생들의 징계를 취하하였는데 또 부당징계를 시도하는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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