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수 끝 세계적 작품 된 '해리포터'를 기억하며

머니투데이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 2020.01.14 07:00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박상준 심사위원장(서울SF아카이브 대표) 심사평

이번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 응모된 작품은 총 273편(장편 29편, 중단편 244편)이다. 작년에는 총 280편이 접수되었으니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수준은 더 상향 평준화되었으며, 특히 중단편 부문에 돋보이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고 그런 만큼 애석한 경우도 있었다.

장편 부문은 본심에 올라온 작품이 세 편에 불과했으나 대상을 다툰 작품들의 수준은 작년보다 나았다고 본다. 당선작은 심사위원진에서 4대1로 ‘천 개의 파랑’을 골랐다. 이 작품은 SF이자 장편소설로서 여러모로 나무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줬다.

심사위원 한 사람의 지지를 얻은 ‘많은 사람의 죄’는 스타일도 눈에 띄고 전반적으로 완숙한 문장을 구사했으나 임팩트가 약한 결말이 결정적인 흠결로 지적됐다. 본심에 오른 나머지 한 작품인 ‘브레이넷’은 앞의 두 응모작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중단편 부문의 경우 대상 수상작인 ‘모멘트 아케이드’는 심사위원 3인의 지지를 받아 선정됐다. 우수상인 ‘테세우스의 배’는 심사위원 1인이 대상으로, 3인은 우수상으로 꼽았다. 이 두 작품이 중단편 부문에서 심사위원진에 가장 고르게 호평을 받은 응모작이다.

가작 세 편을 정하는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네 영혼의 새장’과 ‘그 이름, 찬란’은 비교적 일찍 합의했으나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트리퍼’와 ‘흰 당나귀의 마지막 사막’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며 심사위원들 간에 꽤 오래 논의가 오간 끝에 결국 ‘트리퍼’가 낙점됐다.


이번 응모작들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유난히 많이 거론된 것이 결말부 처리에 대한 아쉬움이다. 개성이 드러나는 스타일이나 강렬한 주제의식만으로도 호평을 받을 작품들이 여럿 있었으나, 심사위원 다수는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지을 적절한 결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아쉽다는 의견이었다. 이는 장편 당선작을 정할 때, 그리고 중단편 가작을 고를 때에 각별히 언급됐던 부분이다.

이번에 두드러진 경향은 주류문학의 배경이 엿보이는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캐릭터, 문장, 정서, 드라마 구성,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장르 SF보다는 주류문학의 습작을 계속해 온 응모자들의 비중이 예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이 명백했다. 이는 해가 갈수록 뚜렷해지는 추세이며, 특히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창작 SF가 국내외적으로 주목받는 일이 이어지면서 저변이 크게 확장된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중단편 부문 예심에서 눈에 띄는 응모작들이 많아서 반가웠다. 조금만 손을 보면 SF 앤솔로지에 수록돼도 손색없을 작품들이 여남은 편은 되었으며, 그런 만큼 본심에 올릴 작품을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고심 끝에 ‘흰 당나귀의 마지막 사막’과 ‘테세우스의 배’와 함께 ‘회귀’를 본심에 올렸다. 그러나 ‘손의 임무’, ‘랜덤 박스’, ‘에딘에게 보고합니다’, ‘우리는 송어를 구웠다’, ‘씃스 스 이쓰’, ‘그곳의 필은 안녕하신가요’ 등도 기억에 남는 썩 좋은 응모작들이다.

매번 심사를 마치고 나면 절감하는 것이지만, 입상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예심을 통과하지 못했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안타까운 응모작들이 여럿이다. 부디 이번에 결과가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창작에 매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판되기 전까지 여덟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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