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 두 남성의 외침, 다시 재판받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20.01.09 09:15
(부산=뉴스1) 여주연 기자 =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58)씨가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마친 후 취재진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20.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1년간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2명에 대한 재심이 결정됐다.

6일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문관)는 강도살인 피의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뒤 모범수로 출소한 장동익(62)씨와 최인철(59)씨가 제기한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변호사로서 35년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1990년 1월4일, 사건의 재구성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변 엄궁동 갈대숲에서 여성 시신 한 구가 참혹한 상태로 발견됐다. 피해 여성의 두개골은 오른쪽이 분쇄골절돼 뇌 일부가 드러나보였고, 상의와 속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의는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여성은 인근에 거주하던 여성 박모씨로 밝혀졌다. 박씨는 무역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현장에선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당시 피해 여성과 데이트 중이던 남성의 진술만 기록된 채 미제로 남겨졌다.

남성에 따르면 사건 당일 두 사람은 낙동강변에 차를 세우고 데이트 중이었다. 이때 괴한 두 사람이 이들을 덮쳤다. 커플 중 남성은 묶인 채 납치됐고 여성은 강간·살해 당한 뒤 시신이 유기됐다.
(부산=뉴스1) 여주연 기자 =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61)씨와 최인철(58)씨가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마친 후 취재진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20.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해 남성은 "두 사람이 가스총으로 위협하며 차량 문을 열고 공격해왔다. 차량에 있던 접착 테이프로 나를 묶은 뒤 강물로 던졌다. 강물에서 테이프가 풀렸고, 범인 중 한 사람과 격투 끝에 도주했다"고 진술했다. 인근 공장에 숨어든 피해 남성은 이후 그곳 경비를 만나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피해 남성은 범인에 대해서는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나머지 한 사람은 키가 작았다. 두 사람 모두 부산 말씨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당시 부산 북부경찰서는 사건 현장에서 시신 외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는듯 했다.


증거 없이, 자백으로 지목된 범인 둘


상황은 2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갑자기 바뀌었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최씨 등을 별건인 공무원 사칭 혐의로 임의동행해 조사하면서 이들로부터 살인사건의 범행을 자백받았다.

최씨는 사건 발생한 지 1년10개월이 지난 시점, 공무원 사칭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1991년 11월8일 오후 3시, 부산 사하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김 양식장 작업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던 최씨를 찾아와 공무원 사칭 혐의로 신고가 접수됐다고 했다.

앞서 이틀 전인 11월6일, 무면허 운전교육을 하던 한 남성이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유원지 공터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하던 최씨를 공무원으로 오인하고 3만원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남성은 최씨의 차량번호를 외워둔 뒤 "경찰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금전을 갈취당했다"며 공무원 사칭으로 신고했다.

경찰은 최씨에게 "경찰서까지 임의동행하자"고 말한 뒤 사하경찰서로 연행했다. 이후 현장에 같이 있었던 장동익씨(61)도 경찰서로 연행됐다. 최씨와 장씨는 경찰 수사에서 공무원 사칭을 포함해 1991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발행한 강도사건 18건을 추가로 '자백'했다.

두 사람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건 검찰의 지적 이후 새로운 강도사건이 추가되면서다.

(부산=뉴스1) 여주연 기자 =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61)씨와 최인철(58)씨가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마친 후 가족들과 만나고 있다. 2020.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91년 11월11일 오후 부산 중부경찰서 소속의 한 순경이 최씨와 장씨로부터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순경의 진술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 남성 진술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순경은 "지난 1989년 12월 새벽,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 강변대로에 세워놓은 자신의 차량 안에서 데이트를 하다 강도를 당했다. 한 명은 체격이 크고 험상궂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체격이 작고 야윈 얼굴이었다. 둘 다 경상도 말씨를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남성이 말했던 범행 수법도 비슷했다. 순경은 "이들이 식칼로 유리를 파손한 뒤 차문을 열고 침입했다. 이후 돈을 갈취한 뒤 나를 트렁크에 밀어넣고 운전한 후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당시 수집된 피해 여성의 손수건에서 나온 정액 혈액형과 최씨의 혈액형이 일치했다.

경찰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최씨를 특정하고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최종 수사 결과 검거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최씨가 각목으로 피해자를 구타한 후 키가 작은 장씨가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정리됐다. 이후 경찰은 최씨로부터 "장씨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도 받아냈다.

1992년 8월 부산지법은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1993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두 사람은 줄곧 경찰의 물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문 받을 당시 경찰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웃옷을 벗은 채로 탕수육과 짜장면 등 중국음식을 시켜 먹었다" "겨자 섞인 물고문을 받았다" 등의 발언을 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주목 받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억울하다"


두 사람은 21년을 복역하고, 2013년 모범수로 특별감형돼 출소했다.

이어 최씨와 장씨는 2014년 8월, 2015년 7월, 2016년 1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 등에 DNA검사와 경찰수사관 6명의 인적사항 공개 등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부산=뉴스1) 여주연 기자 =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61)씨와 최인철(58)씨가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앞두고 당시 변호사 선임 서류를 공개하고 있다. 빨간 원 안은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과 날인. 2020.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렇게 일단락되는듯했지만, 2016년 10월1일자 SBS 시사예능 '그것이 알고싶다'에 이 사건이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35년 동안 변호사를 하면서 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언급했는데, 당시 문 대통령은 가장 유력한 야권 대선후보였기에 매우 큰 주목을 받게됐다.

이들은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2017년 5월8일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018년 7월 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사를 진행해 지난해 4월 경찰고문에 의한 허위자백과 이를 검증하지 않은 검찰의 부실수사라고 결론을 지었다.

지난 6일 부산고법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림에 따라 두 사람은 사건 발생 30년 만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부산고법은 이른 시일 안에 공판 준비기일을 열 예정이다. 최씨와 장씨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지라 믿는다:며 재심 결정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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