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거래소, 코스닥 구주매출 제한…"책임경영" vs "자율성 침해"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황국상 기자 | 2020.01.09 04:30

거래소 "2년 이상 보유 지분만 공모 규모 50% 안에서 구주매출 가능" 내부지침 IB에 전달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 IPO(기업공개)의 구주매출을 제한하는 지침을 마련해 IB(투자은행)에 전달했다. 구주매출은 최대주주 뿐 아니라 상장 전 단계의 투자자 지분을 현금화하는 것을 말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무분별한 구주매출을 막고 대주주의 책임 경영을 유도하겠다는 게 거래소의 복안이다.

하지만 IPO 기업은 물론이고 주주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상장 전 시점까지 수 차례 투자를 받은 일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 기업의 상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해 11월 증권사 IB를 대상으로 코스닥 IPO의 구주매출과 관련한 내부 지침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코스닥 상장규정 등 문서화된 지침은 아니지만 실제 심사를 담당하는 과정에 반영된다.

당시 거래소가 IB에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코스닥 IPO 기업의 구주매출은 2년 이상 보유 지분을 대상으로 하고, 구주매출 총액이 공모 금액의 50%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 ‘50%’는 최대주주 지분 뿐 아니라 PE(사모펀드) VC(벤처캐피탈) 등 상장 전 단계에 FI(재무적 투자자)로 참가한 이들의 지분을 포함한 규모다.

최대주주가 구주매출을 할 경우 남은 보유 지분에 대해선 보호예수 기간을 확대하면 좋겠다는 내용도 당시 지침에 포함됐다. 현행 규정상 최대주주는 상장 뒤 6개월간 보호예수를, FI는 투자 후 상장까지 2년 미만 지분을 보유할 경우 1개월간 보호예수를 의무적으로 확약해야 하는데 이 보호예수 기간을 각각 최소 1년으로 연장했으면 한다는 게 거래소의 의견이었다.

코스닥시장 개설 초기만 해도 구주매출은 전면 금지됐다. 구주매출은 상장을 위한 지분요건 충족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회사에 신규자금이 유입되는 효과는 없다. 중소 규모의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마련된 시장인데 구주매출을 허용하는 것은 시장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자본시장 발전과정에 시장 참가자들이 다변화됐고 기업의 자산구성도 그만큼 다양화됐다. 일률적인 구주매출 금지가 시류에 맞지 않자 제한이 점차 풀렸다. 이를 다시 신주모집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그 동안 증권사 IB마다 IPO 기업의 구주매출과 관련한 문의가 많아 어느 정도 기준이 되는 사항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었다”며 “꼭 지켜야 한다는 규정이 아니라 대주주의 과도한 구주매출은 투자자 우려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기준은 지키면 좋겠다는 권장사항을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50% 제한요건에 대해서는 "물론 실제 심사 과정에서는 지분 분산 구조나 기업의 특성 등을 반영해 융통성 있게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행사는 물론이고 IB들은 거래소 지침을 단지 ‘권장사항’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해 전달한 지침을 무시하고 상장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발행사·IB는 사실상 없다. IB들은 “발행회사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나 경영 전략 등에 따라 구주매출에 대한 수요가 다를 수 있다”며 “융통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래소가 제시한 기준을 무시할 수 있는 IB나 발행사가 얼마나 되겠냐”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유니콘 기업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니콘 후보 기업은 장외에서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PE나 VC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다. 투자를 많이 받을수록 대주주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IPO 과정에서 추가적인 지분 희석을 막기 위해, 혹은 전략적 투자자를 포섭하기 위해 구주매출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 IPO는 대주주나 투자자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창구 역할을 하는데, 구주매출을 제한할 경우 투자 시장의 활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비상장 기업의 성장 단계별 투자 유치는 물론 창업에서부터 정규 증시 상장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는 사이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IB 관계자는 “거래소의 구주매출 지침으로 인해 일부 IPO를 통해 구주매출을 하려던 기업의 공모 절차 돌입이 어려워진 사례도 있다”며 “최근 꾸준히 상장 규정 완화 기조가 이어져왔는데 이번 거래소의 지침은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VC 관계자는 “구주매출을 하려면 2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정도의 가이드라인이라면 웬만한 VC에게는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상장 전 프리IPO 단계에서 들어간 투자자라면 일부 엑시트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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