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 지켜주세요"…죄 없는데 직장 잃은 '하니'들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 2019.12.24 05:00

EBS '보니하니' 29일까지 잠정 중단…"일 덮으려는 행태"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EBS 인기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가 지난 12일부터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하니' 버스터즈 채연(15)은 개그맨 최영수와 박동근의 잘못된 언행으로 하루아침에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급기야 일을 쉬게 됐다. 정든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여성들처럼 '하니'는 이렇게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걸까.



미성년자에 주먹·'리스테린' 유흥업소 욕설


개그맨 최영수가 지난 10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 채연(15)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21일 방송계에 따르면 EBS는 오는 29일까지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이하 보니하니)를 잠정 중단한다. '당당맨'으로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최영수의 행동과 '먹니'를 맡은 개그맨 박동근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0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 최영수가 채연을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상에는 채연이 최영수의 옷깃을 잡자, 최영수가 이를 강하게 뿌리치고 주먹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이 나왔다. 다른 출연자에 의해 화면이 가려져 실제로 때렸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EBS 측은 "출연자 간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채연은 손으로 팔 부위를 감싸며 아프다는 표시를 했다.

다른 영상에서 박동근이 채연에게 "리스테린 소독한 X"이라는 발언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채연이 "독한 뭐라고요?"라고 물었고, 박동근은 "독한 X"이라고 답했다. '리스테린 소독'은 유흥업소 은어로 알려져 있다.

이후 비판이 계속되자 김명중 EBS 사장은 직접 사과에 나서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영수와 박동근은 출연이 정지됐고, 프로그램 제작진도 전면 교체됐다.



프로그램 중단한 EBS…"일을 덮으려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EBS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 / 사진제공=EBS

이 과정에서 아무 죄가 없는 '하니'는 일자리를 잃었다. 일단 프로그램 잠정 중단 시기인 29일까지다. 이후 복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BS 관계자는 "제작진은 전면 교체되는 것이고 출연자는 아직까지 특별하게 얘기가 된 게 아니라서 현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새로운 제작진이 마련되고 나서 (출연진 관련)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도진기 변호사는 지난 1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프로그램 중단으로 채연양이 피해자인데, 좋은 기회 좋은 일을 잃었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해주고 가해자를 분리해야 하는데, 크게 봐서 일을 덮으려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너가 일 괜히 시끄럽게 만들면 주변도 힘들어지고 너도 여기서 일 못하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넘어가자'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냐"며 "이런 방식이 통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채연은 악플 등 2차 피해에 시달리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최영수의 행동과 박동근의 발언에 큰 문제가 없다며 '마녀사냥'을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최영수의 발언은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최영수는 지난 1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하차하는 게 채연이가 원하는 일일까? 절 욕하는 분들은 오늘 채연이가 저한테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모를 거다"라며 "자기 때문에 저 잘리는 거냐고 하루 종일 울었다. 솔직히 전 오늘 일로 채연이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정말 걱정된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오히려 피해자인 채연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EBS 측은 채연의 일자리를 보장한다거나 상담, 보호 프로그램 등 보호 조치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원칙을 밝히지도 않았다.



성희롱 피해자 53% "불이익 조치 받았다"


/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이 같은 상황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직장 내 폭언·폭행 및 성희롱 피해 사실이 알려진 후 직장에서 불이익을 겪는 '하니'들은 무수히 많다.

서울여성노동자회(이하 서울여노)에 따르면 2018년 상담자(550명) 중 15%만 성희롱 피해자 불이익 조치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아직 모른다고 답한 32%를 제외하면, 53%가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 이들은 집단 따돌림을 당하거나 정신적 손상을 방치당했고, 심한 경우 부당인사나 해고 등 신분 상실을 경험했다.

구체적으로 A씨는 "입사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표가 성희롱을 했다. 화가 났지만 당시에는 참았다"며 "이후 대표가 진심어린 사과를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네가 약자이니 이쯤에서 회사를 그만두라'고 오히려 나에게 삿대질을 하더라"라고 밝혔다.

직장 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들이 자진 퇴사를 택하는 경우도 많다. B씨는 "업무 얘기 중에 상사가 갑자기 'XX년'이라고 하면서 때릴 기세로 달려들었다"며 "다른 직원들이 말려서 맞지는 않았지만, 너무 모욕적이라 그만뒀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채연이 이 같은 피해자들과 같은 불이익을 겪지 않고 밝은 '하니'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보니하니 게시판에는 "채연양 자리 그대로 두세요" "왜 채연양이 피해를 입어야 하나요" "채연양 지켜주세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주세요 등 채연의 복귀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염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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