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신한금융의 '벤치'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 2019.12.15 15:11
“공원의 벤치는 누구의 것인가? 만인의 것이다. 준비는 하되 자리가 비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13일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이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의 최종후보군 인터뷰를 마치고 한 말이다. 결과에 대한 승복의 미덕이 담긴 답변이었다.

그의 말을 인용한 것은 회장직을 벤치에 빗댄 대목 때문이다. 임 사장은 1986년 2월 입행에 34년째 한 조직에 몸담아 온 정통 ‘신한맨’이다.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가 은행권을 주름잡던 때 후발주자였던 신한을 국내 리딩뱅크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 민정기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등 다른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리딩금융그룹으로 도약시키는 데 일조한 주역들이다. 누구든 벤치에 앉을 수 있다는 얘기는 연임이 결정된 조 회장을 비롯해 5인 모두 모자람 없는 후보란 얘기면서 동시에 준비가 안 된 인물은 벤치를 가까이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신한금융은 ‘신한사태’로 일컬어지는 경영진 내분, 그룹 1·2인자 대립 등 크고 작은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빠르게 봉합했다. 이 과정에서 회장·행장직을 외부에 내주지 않았다. ‘문제가 있어도 스스로 해결하는’ 특유의 독립성을 발휘했다. 조 회장의 연임을 두고 채용비리 재판에 따른 ‘법률 리스크’가 지적되지만 이마저도 대비한 게 신한금융이다. 이만우 회추위원장은 조 회장의 이름을 빗대 “‘용병’을 선발한 것이지, 회장을 추대한 게 아니다”며 “(회장) 유고 때 어떤 규정과 절차가 있는지 금융당국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유고 여부는 한 달 뒤 결정된다. 은행 채용비리 재판의 전례를 고려하면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신한금융은 곧장 회복탄력성을 보여줄 것 같다. 벤치에 앉을 자격을 갖춘 이들이 여럿이고, 누구를 앉힐지에 대한 선택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지녀서다. 회장·행장을 선임할 때마다 이른바 ‘갑툭튀’ 후보가 난립하는 경쟁 은행들은 신한의 벤치가 부럽다. “벤치가 어딘지, 누가 내려앉을지, 앉아도 언제 자리를 내줄지 불안하다”. 경쟁 금융지주사 직원의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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