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말뚝 박은 그 남자 "왜 일본제품 쓰나"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 | 2019.11.30 07:00

40년 '천공 외길인생'걸어온 정영호 대표…"남극에서 인도까지 동분서주…일제 선호 현실 안타까워"

러시아로 수출할 천공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부철중공업의 정영호 대표. / 사진 = 오진영 기자

해마다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다가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싼 일본 제품을 사용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물을 짓기 전 지반에 구멍을 뚫는 '천공기'를 제작하는 부철중공업의 정영호 대표(69)는 이런 의문에 인생을 건 인물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남극 세종기지 지을 때의 일화'라는 제목의 정 대표 관련 게시글이 올라와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었다. 해당 글의 게시자는 "40년 굴착기 인생을 걸은 정 대표가 남극에 말뚝을 꽂았다"면서 "수십 년간 일본 제품만 쓰던 업계에 경종을 울린 사례"라고 정 대표를 소개했다.

게시글이 올라오자 40년간 천공기에 몸바쳐온 '의지의 한국인'에게 누리꾼들의 이목이 쏠리면서 한때 부철중공업의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관심이 폭주했다. 정 대표는 어쩌다 남극까지 가게 됐을까. 직접 정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아무도 안 된다던 남극, 직접 배 타고 찾아가 말뚝 박아


남극 공사 현장에서 포즈를 취한 정 대표와 직원들. / 사진 = 오진영 기자


남극의 킹 조지 섬(King George Island)에는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나부끼는 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남극 조약에 가입한 후 남극 연구를 위해 1988년 2월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고 17여 명을 파견해 기지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제 자리를 잡은 세종기지지만 증설 당시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안정적인 건물 건설을 위해서는 건설 전 파일(Pile·말뚝)을 깊게 박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영하 55도의 남극에서는 파일 아랫부분에 서릿발이 어는 문제가 발생했다. 세종기지는 이로 인해 건물이 자꾸 옆으로 기울어지는 현상과 씨름해야 했다. 이 문제는 앞서 남극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독일 등의 선진국도 피해갈 수 없는 숙제였다.

서릿발이 얼어붙지 않을 만큼 깊게 파일을 박자니 남극에는 대규모 항구가 없어 깊게 파일을 박을 대형 장비가 들어갈 수 없었다. 정 대표는 '이 때가 기회다'라고 생각해 번쩍 손을 들었다. 정 대표는 "주변에서 다들 그런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반대했다"면서 "하지만 세종기지는 우리나라의 기지다. 그곳만큼은 반드시 국산 기술로 해야겠다는 마음에 선뜻 자원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다들 항구가 작아 기계가 못 들어간다고 난색을 표하는데,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했다"며 "아예 기계부품을 직접 들고 배에 탔다. 남극에 항구가 없다면 현지에서 기계를 조립하면 될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공수해 간 부품을 조립해 열흘 만에 현지에서 기계를 모두 만들었다면서 "어느 나라도 못해낸 것을 한국의 기계가 거침없이 구멍을 뚫으니 다들 놀라더라. 그 때는 정말 벅찼다"며 "40년간 지반에 구멍 뚫는 '천공기'사업에만 한 몸 바쳤는데 그 때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98%이상이 일본산 기계…국산 제품에 허가 안 내주는 현실 안타까워


천공기 부품들. / 사진 = 오진영 기자

40년간 '국산 천공기의 대중화'를 위해 남극까지 달려간 정 대표지만, 정 대표가 보기에 아직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바닥에 구멍을 뚫다'라는 말도 '천공(穿孔)'이라는 말 대신 항발·항타라는 말을 쓰는데, 이 단어도 일본식 표현이다. 고집스럽게 한국식 표현인 '천공'을 사용한다는 정 대표는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일본 제품이 98%에 달하는 현실 때문이다. 건설 현장에서 천공기를 안 쓰는 데가 없는데 죄다 일본 제품이면 어떻게 하겠나"면서 "최근 불매운동이다 뭐다 해서 반일 감정이 뜨거운데, 이렇게라도 하나하나 국산화해가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정 대표를 가장 좌절시키는 것은 '국산제품이 되겠냐'는 편견이다. 정 대표에 의하면 항발·항타기들은 23으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부여받는데, 같은 종류의 기계임에도 정 대표가 만든 국산 천공기에는 23 번호판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정 대표는 22로 시작하는 별도의 번호판을 사용하는데, 관련 업계에서는 '허가도 못 받은 함량 미달 제품'이라는 편견으로 공사를 맡기길 꺼린다.

정 대표는 "나이지리아·카자흐스탄·몽골부터 시작해서 인도 화력발전소까지 말뚝을 꽂았는데, 얼마 전에도 한 공사현장서 '국산 제품은 믿을 수 없다'면서 퇴짜를 놓더라"며 "이런 일을 겪을 때 제일 힘이 빠진다. 국산 제품이라서 무조건 사용하라는 것도 아니고, 기회라도 한 번 달라는 건데 일본 제품 사용에만 열을 올리니…"라며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굵직한 공사 연이어 따낸 부철중공업…"땀흘리면 부자될 수 있는 사회 위해 노력"



정영호 대표와 부철중공업 직원들. / 사진 = 오진영 기자


1977년 정 대표가 '장비의 국산화'를 외치며 시작한 부철중공업은 어느덧 연 매출 100억 원이 넘는 회사로 자랐다. 정 대표가 일군 부철중공업은 인천공항 제 2터미널 기반공사·인도 화력발전소 기반공사·한강 미사대교 등 다른 회사들이 '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든 공사들을 도맡아 처리할 정도로 알아주는 회사가 됐지만, 정 대표는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소매를 걷어붙이고 제일 먼저 출근한다.

정 대표는 "전문대 나온 신입사원도, 30년 기름밥 먹은 베테랑 사원들도 '화이트칼라'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한다"면서 "우리 회사의 베트남 출신 사원도 5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국적·학벌에 관계 없이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부자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나"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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