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연내 시한’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미국을 강하게 흔들고 있다. 이틀 동안 김계관·김영철·김명길 등 고위급 인사가 차례로 등장하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압박했다.
1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미협상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기자와의 문답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미(북미)대화는 언제가도 열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고 했다.
이날 새벽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의 담화와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전날 담화에 이어 김명길 대사까지 하루 새 대미 메시지를 3차례 쏟아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곧 보자"며 3차 북미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입장변화가 먼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가 먼저”…협상허들 높인 北
특히 김영철·김계관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폐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치적’으로 자부하는 성과들에 해당하는 값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선국면에서 북핵 위협 제거를 대북 외교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 상황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북미관계를 이어가려 한다면 '새로운 길'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는 관측이다.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나 한미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 체제안전보장 등을 먼저 제시하지 않을 경우 비핵화 대화가 무산되고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것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미국은 조미사이의 만남이나 연출하고 대화의 시한부로 정해진 연말을 무난히 넘기려고 타산하고 있지만 시간벌이를 위한 무익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조선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조선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의 전환을 결단해야 대화에 임할 수 있다는 태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한을 넘겨 대화의 기회가 사라진 후 조미 핵대결 구도가 첨예하게 부각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은 미국”이라고 덧붙였다.
◇北, 스웨덴 협상중재 거부…美 직접협상 촉구
이어 “미국은 더 이상 3국을 내세우면서 조미(북미)대화에 관심이 있는 듯 냄새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 조미가 서로의 입장을 너무도 명백히 알고 있는 실정에서 스웨덴이 더 이상 조미 대화문제를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대사는 스웨덴을 향해 “조미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미국의 끈질긴 부탁을 받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미국은 잠자코 있는데 스웨덴 측이 곁가마 끓는 격으로 처신한다면 오히려 푼수 없는 행동으로 비쳐질수 있다”고 비난했다.
스웨덴은 지난달 5일(현지시간) 북미가 실무협상을 가진 곳이다. 협상 결렬 후 스웨덴은 북미 양측에 12월 다시 스톡홀름에서 만날 것을 권유하는 초청장을 보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이런 뜻을 김 대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대사의 발언에 대해 “북한이 요구한 새로운 셈법을 미국이 직접 협상테이블 위에 올려놓지 않는 한 그 어떤 중재에도 호응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라는 결단만이 비핵화 협상의 재개와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이라며 “선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후 비핵화 협상이라는 새로운 협상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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