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규│① 2019년 예능의 빌런

김리은 ize 기자 | 2019.11.12 08:45
JTBC 디지털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웹 예능 ‘워크맨’에서 장성규는 고용되는 ‘을’의 입장을 대변하며 각종 일자리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들은 사실상 ‘갑’에 가깝다. 그는 게임회사에서 참고를 위해 게임을 하고 있는 직원에게 ‘놀고 있네”라고 말하거나, 같은 성인이면서 직업인인 여성 편의점 점장에게 “애기인줄 알았는데 와 대가리”라고 이야기한다. 일상생활에서라면 당연히 예의에 어긋나는 발언들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각종 일자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은 그의 선 넘는 행동을 갑을관계의 권력을 전복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피자 배달 도중 경로를 이탈해 2시간 동안 두 곳에만 배달을 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며 상황을 모면하거나, 영화관 아르바이트 도중 직원으로부터 “취식하면 퇴사”라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매장에서 팝콘을 먹는 것처럼, 그는 회사의 규정을 어기며 노동자에게 주어진 여러 규제들을 무시하는 쾌감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장성규가 ‘을’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워크맨’에서 장성규는 재미를 위해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다. 회사의 철학을 모호하게 설명하는 이사에게 “이런 이사님께서 회사 이끌어가시는 거 맞아요?”라고 일침을 가할 수도 있고, 공익 출신이면서도 해병대를 나온 사장이나 직원에게 “대가리 박아”라고 말하며 군대 문화를 조롱할 수도 있다. 때때로 직원들에게 일을 하지 말자면서 태업을 종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크맨’은 직장 상사들을 놀리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성규가 자신이 겪는 모든 순간마다 ‘막 던지는’ 멘트가 핵심이다. 그가 ‘막 던지는’ 멘트들은 반드시 위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는 소개팅 앱에 시범으로 사진을 등록하는 인턴 PD나 호텔 직원의 사진을 보고 “실물과 다르다”라며 품평을 하고, 직원식당에서 돈까스를 두 개 떠오라는 무리한 요구에 자신의 것을 같이 먹자고 말하는 여성 직원에게 “착해 빠져가지고”라며 공격한다. 키즈카페에서는 홍고추를 들고 있는 아동 앞에서 “오 고추 크다 부럽”이라는 성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워크맨’에서 장성규는 직장생활의 애환을 보여주며 직장의 문제들을 꼬집기도 하는 ‘슈퍼히어로’ 같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콘셉트 안에서 ‘빌런’처럼 누구나 공격할 수 있다는데 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 장성규는 ‘선넘규’(‘선을 넘는 장성규’)가 됐다. ‘워크맨’에서 노동자와 그 날만 일하는 방송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는 인터넷 방송과 TV 양 쪽을 오가면서 회사나 방송사가 허용하지 않는 멘트를 던지는 ‘선 넘기’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의 언행은 ‘선 넘기’라는 말과 함께 마치 놀이처럼 받아들여졌고, 그 과정에서 회사에서, 지상파 TV에서, 또는 타인 앞에서 해서는 안 되는 언행들이 선을 넘는다. 장성규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 옷 갈아입기 대결을 앞둔 정형돈에게 “노팬티냐”라고 묻거나, 걸그룹 아이즈원 멤버 강혜원이 게임을 위해 발로 집었던 종이컵을 두고 “이 물컵은 앞으로 제 물컵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성 출연자를 앞에 두고 굳이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특정 신체 부위를 성적대상화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다. 그러나 정형돈이나 당시 방송 접속자들은 그에게 “선 좀 그만 넘어라”라고 만류하면서도 “거 좀 같이 씁시다”라는 댓글을 달며 그의 개그에 동조하거나, 그를 ‘선넘규’라 말하며 웃음으로 소비했다. 장성규의 ‘선 넘기’는 갑갑하게 막혀 있는 것 같은 조직 또는 시스템에 구멍을 내는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 개인이나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시청자들을 모욕하는 선도 넘긴다. 그의 ‘선 넘기’는 인터넷의 어느 음지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멘트들을 자본이 들어간 방송사 콘텐츠로 끌어올렸다.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콘텐츠의 경계가 사라져가면서, 장성규처럼 기존의 질서를 눈치 보는 것 같지만 사실상 마음대로 하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유튜브에서도 문제가 돼야 할 언행도 기존 미디어에 나오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혐오하는 표현에 ‘선 넘기’라며 웃는다.

JTBC에서 아나운서로 재직 중이던 2016년, 장성규는 아침 뉴스를 그만두고 유튜브 채널 ‘짱티비씨’를 통해 1인 크리에이터에 도전했다. 스스로 “처음으로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고 대본에 얽매이지 않았던 콘텐츠”라 밝힌 이 채널에서 그는 이미 ‘선을 넘는’ 개그를 보여주고 있었다. “(JTBC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이) 계속 말을 걸어준다”라는 말을 하다 “(질문을) 따먹으라고?”라는 질문을 받자 “어 따먹으라고? 누구를?”이라고 답했고, ‘예쁜 후배가 내 가슴을 만진다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여성이 남성의 가슴을 만지는 행동이 호감인지 성희롱인지를 구별하는 콩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며 성적 대상화하고, 실제로 여성이 성희롱을 경험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현실을 왜곡하면서 웃음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여성가족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행위자 성별은 남성이 83.6%다). 또한 그는 편의점 음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씨유세끼’에서도 트레이닝을 위해 그의 신체 상태를 설명하는 여성 필라테스 강사에게 “불쾌한데요? 112 좀 눌러봐”라고도 말했다. 그가 여성을 “따먹는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누가 약자이고 강자인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장성규는 오히려 스스로를 약자의 위치에 두며 이를 ‘선 넘기’의 명분으로 삼는다. ‘워크맨’에서는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한 뒤에 얼마 벌지 못했다고 한숨 쉬는 ‘을’이고, ‘아는 형님’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는 인기 예능인들 사이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시청자나 SNS 팔로워 중에는 평범한 내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장성규가 자서전 ‘내 인생이야 임마’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공무원과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5년을 방황하고, 늦은 나이에 아나운서를 준비하다가 MBC ‘신입사원’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탑 5인 안에 들었다는 이야기는 취업을 고민하는 많은 20대의 공감을 살 수 있다. 실제로 장성규는 취업정보사이트 사람인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워크맨’의 모의면접에서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냉철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모습으로 호평을 받았다. 또한 그는 JTBC ‘아는 형님’에서 “혼후순결”이라는 농담을 하며 부부 관계를 농담의 소재로 삼다가도 둘째 출산 예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부모님의 빚을 갚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예의없는 ‘선넘규’의 이미지를 가졌지만 필요할 때는 진지하고, 많은 고생을 했고, 한 집의 가장이자 애처가이며, 부모님의 빚을 갚는 효자. 이런 모습들은 장성규가 대중과 비슷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그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재미를 위한 위악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믿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을’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을, ‘을’의 심정을 아는 장성규가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약자처럼 보이는 자신의 위치에서 여성 출연자들의 외모를 반복적으로 품평하거나, 재미를 가장해 자신의 “팬”이라 밝힌 참가자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할 수 있다. 장성규의 위치는 ‘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약자로 놓으며 더 약한 이들을 비웃거나 괴롭힐 수 있는 치사한 ‘갑’에 있기도 하다.장성규는 ‘워크맨’에서 맞지 않는 유니폼에 대해 “지퍼 열고 다녀도 돼요?”라고 묻거나 반바지 복장을 지적받자 “벗고 할까 그냥?”이라고 반문하면서 웃음을 유도한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불법 촬영을 두려워할 때, 그는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보다 약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모든 이들을 일관되게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장성규는 JTBC의 아나운서 출신이자 인기 예능인이면서도 방송에서는 약자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타인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해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자신은 약자든 강자든 누구나 가져야할 품성은 무시한다. JTBC ‘방구석 1열’에서 장성규가 박신양의 연기를 희화화하며 흉내냈을 때, 배우 전도연은 박신양이 이 신을 촬영할 때 했던 고충을 설명하며 “그렇게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 대사”라고 지적했다. 당시 장성규는 전도연의 말에 “이거는 편집을 해야겠다”라면서 황급히 자신의 행동을 수습했다. 그러나 최선은 일단 선을 넘은 후 뒤늦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개그를 하기 전에 웃음의 소재가 되는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고 아내를 사랑하며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타인에게 무례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순발력도 유머 감각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열려 있는 사람으로 있으려 한다.” 장성규가 자서전 ‘내 인생이다’에서 쓴 문장이다. 실제로 그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악플과도 소통”해야 한다는 신조를 밝혔고, 자신을 향한 악플에 직접 반박을 달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직접 해명하는 것은 좋은 소통의 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SNS에서 경직된 말투를 썼다는 것만으로 사과를 해야 했던 하연수의 사례나, 자신의 자유로운 일상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던 故설리의 사례를 떠올리면 악플에 직접 답을 달 수 있는 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계를 꾸리는 자영업자의 사업장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타인의 외모를 지속적으로 품평하는 것, 혹은 항공사의 가족 할인 제도에 대해 “배다른 자식도 되느냐”라고 묻는 것처럼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되는 발언을 하는 것이 모두 ‘선넘규’라는 아이콘 아래 합리화된다. 그러나, 지금 ‘선넘규’에 웃는 이들이 언젠가 그 웃음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 때도 웃을 수 있을까. 지금의 장성규에게는 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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