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모델보다 가격 싼 쏘나타…디플레 징조일까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 2019.11.06 06:20

[소프트 랜딩]공급 과잉이 낳은 저물가의 아이러니

편집자주 |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쇼핑 행사인 '2019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가 1일부터 22일까지 3주간 열린다. 2015년에 시작돼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코세페는 올해 유통·제조·서비스 기업까지 약 660여개 업체가 다양한 할인 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요즘 대세가 된 온라인쇼핑몰의 경우 11월을 기점으로 각종 할인 행사와 함께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 예컨대 G마켓과 옥션, G9은 오는 12일까지 ‘빅스마일데이’를 실시하는데 판매 스토어만 1만여개에 달하며, 총 2500만개의 할인 상품을 쏟아낼 예정이다.

대형유통업체인 롯데그룹은 오는 7일까지 ‘롯데블랙페스타’를 개최해 10개 유통 계열사가 총 1조원 규모에 달하는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할 예정이다. 경쟁사인 롯데, 현대그룹 역시 대규모 할인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할인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사고 싶었던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반갑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진한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면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엄청난 규모로 쏟아내는 할인제품들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행사를 매년 지속한다는게 과연 가능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더욱이 지난 8월과 9월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하고 10월에도 0%대에 머물면서 저물가를 넘어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는 마당인데, 거기에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으면서 대대적인 할인 행사까지 치르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가 저물가를 자초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쉽게 자동차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2018년 기준 국내 자동차 생산 대수는 총 400만대에 달한다. 이중 내수 판매는 약 150만대 가량이고 수출은 250만대 정도이다. 2015년 460여만대(내수 약 160만대, 수출 약 300만대)를 기록한 이후 자동차 생산은 4년 연속 감소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320만대로 전년대비 67만4000대 늘었다. 그런데 등록자동차 증감 추이를 보면 2015년 87만1000대를 기록한 이후 2016년 81만3000대, 2017년 72만5000대, 그리고 작년에 60만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자동차 내수 공급은 10만대 줄어드는 사이에 등록 대수는 거의 30만대 가까이 줄었다. 수입차까지 포함해 내수 시장에 공급되는 차량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급 과잉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판매되는 자동차의 경우 내구성도 한층 개선되고 품질 면에서도 과거보다 월등히 향상된 제품들인지라 한번 구매하면 스마트폰처럼 1~2년마다 바꾸는 그런 제품이 아니다. 이런 제품의 특성 또한 그만큼 신차 구매 수요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연간 150만대 이상 꾸준히 내수 시장에 공급되는 상황에서 신차에 대한 국내 수요가 계속 줄어든다면 결국 수요-공급의 법칙 상 자동차의 가격은 아무리 올리려 해도 올릴 수가 없는 상황에 빠져 든다.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소비자물가지수 세부항목 중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2015년=100 기준)를 보면 2009년도 중형승용차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97.007이다. 그러나 2019년(1~10월 평균치) 중형승용차 물가지수는 이보다 낮은 96.68를 기록하고 있다. 즉 중형승용차의 소비자가격을 2015년 100으로 보았을 때 2019년 가격은 2009년보다도 오히려 떨어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내 대표적인 승용차 브랜드인 쏘나타(가솔린 2.0 기준)의 경우, 10년전인 2009년 최저 가격은 1831만원부터 시작한다. 약 10년이 지난 2019년 현재 쏘나타 최저가 모델의 가격은 2346만원이며, 가격 차이는 515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소비자물가지수(2015년=100 기준)를 적용해서 실질가격을 구해보면 2019년 쏘나타 가격은 2238만원, 2009년도 쏘나타 실질가격은 2070만원으로 환산되며, 그 차이는 고작 168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5년 전인 2014년도형 실질가격(2271만원)과 비교하면 2019년형이 오히려 더 낮다.


게다가 최근 출시된 쏘나타는 과거의 쏘나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능이나 품질면에서 향상됐다. 각종 첨단 장치들(크루즈컨트롤, 차선이탈 방지 장치 등)과 안전장치(커튼 에어백 포함 9-에어백 등)에 열선 시트 등 다양한 기본 옵션들과 향상된 주행 성능과 내구성, 그리고 각종 A/S 서비스까지 고려하면 이는 수백만원 가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최근 코세페에서 현대차는 쏘나타의 가격을 3~7%까지 할인해주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니 현재 쏘나타는 10년 전 쏘나타 모델보다 더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비단 자동차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각종 텔레비전과 냉장고, 가구 등 각종 내구재에서부터 시작해 의류, 신발, 가방, 주방 및 생활용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과거와 비교할 때 거의 오르지 않은 가격으로 공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각 통신사들은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판매한다. 심지어 각종 프로모션 혜택을 합하면 기존 제품보다 신제품의 가격이 오히려 더 저렴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직장인들이 식사 후 찾는 필수코스인 커피전문점만 해도 그렇다. 스타벅스 등 유명브랜드를 제외한 소규모 테이크아웃 커피점들을 보면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가격이 몇년째 거의 변화가 없다. 심지어 주변에는 오히려 이보다 더 싼 900원, 1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점포가 새로 오픈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제품이나 서비스의 저물가 현상은 결국 시장 수요보다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공급되는 ‘공급 과잉’이라는 요인 외엔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다.

저물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IMF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경제(Advanced Economies)의 물가는 1.5%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1,8%, 일본은 1.0%, 독일 1.5%, 프랑스 1.2%, 영국 1.8%, 이탈리아 0.7%를 기록할 것으로 IMF는 전망했다.

그런데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추정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각국 중앙은행이 사들이 자산의 규모는 무려 12조 달러(약 1경4156조원)에 달하며, 최근 일본과 유럽의 경우 제로금리도 모자라 양적완화 조치를 다시 꺼내들고 있다. 즉 각국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공급해 인플레이션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고 있음에도 이들 국가들은 고작 1%대의 저물가에 머물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학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글로벌 저물가 현상의 기저에는 이미 시장의 수요를 뛰어넘는 엄청난 물량의 제품과 서비스가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최근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저물가 또는 마이너스 물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근 국내 경기 흐름 상 그러한 수요 부진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공급이 수요를 훌쩍 뛰어넘는 공급과잉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 아무리 돈을 찍어내고 금리를 제로수준까지 낮추어 경기를 부양한다고 해도 물가가 2%도 채 오르지 않는 일본이나 여타 선진국을 볼 때 이러한 심증은 확신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지금은 저물가를 걱정하기에 앞서 만성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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