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이재용 파기환송심과 백의종군

머니투데이 오동희 사회부장 | 2019.10.30 05:10

편집자주 |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편집자주]

조선 25명의 왕(대한제국 고종·순종 2대 제외)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는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는 표현이 총 65곳에 나온다.

백의종군은 아까운 장수를 참형으로 다스려 전투력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도록 해 복권케 하는 징벌의 일종이다.

재미있는 것은 65회의 백의종군 기록 중 80% 이상이 한민족의 가장 큰 수난기라고 할 수 있었던 7년 전쟁 '임진왜란' 때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기록의 40% 이상(41.5%)이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때(27회)이고, 그 아들 광해군까지 합치면 전체의 65% 가량(42회)이다. 인조 때(11회)까지 합치면 백의종군의 80% 이상이 이 시기에 몰려있다.

형벌로서 백의종군이 언급된 시기가 국난의 시기와 겹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도 이 시기다. 다만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순신 장군의 첫 백의종군은 임진왜란(1592년)보다는 5년 전이다.

실록상 이순신은 조선시대 징벌로서 백의종군을 사실상 처음 기록한 주인공이다. 선조 20년(1587년) 북방을 지키던 조산만호 직책의 이순신이 함경북도 지역 녹둔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10대의 장형(곤장형)과 함께 관직에서 물러난 게 첫 번째 백의종군의 길이었다. 당시 선조는 퇴각 명령을 내린 이순신에게 "장형을 집행하게 한 다음 백의종군으로 공을 세우게 하라"고 명했다.

두 번째 백의종군이 수군통제사 원균과 관련된 정유재란 때인 1597년의 일이다. 10년만에 두번째 백의종군하게 된 것이다. 선조는 "두 장수는 우선 합심하고, 이순신은 전장에서 그 죄를 씻도록 하라"고 백의종군을 명한다.

이런 두 번의 백의종군의 기회가 없었다면 12척의 배로 조선을 지켰던 명량해전도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때 이순신의 나이 52세다. 그 후로 경상우도 병사 조대곤, 충청병사 신익, 윤선각, 변언수, 권징, 조경, 변응성, 김시립 등의 백의종군을 청하는 기록들이 이어졌다.

지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열렸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 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바란다"면서 몇 가지 당부를 했다.


1993년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과 현재 같은 나이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당부였다. 이를 두고 경제개혁연대 등은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우연찮게도 우리는 400여년전 한반도를 침탈했던 그 일본과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을 무기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더 나아가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다. AOL, 지오씨티, 넷스케이프, 야후, 컴팩, 라이코스, 모토로라, 노키아, NEC, 마쓰시타, 도시바 등 아직도 낯익은 1990년대의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1990년대 가장 인기있던 웹사이트인 AOL은 2019년 현재 구글과 유투브, 페이스북, 바이두에 자리를 내줬다. 가장 큰 닷컴기업이었던 넷스케이프, 엑사이트, 라이코스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에 밀려났다.

휴대폰 1~3위였던 모토로라, 노키아, NEC는 삼성, 애플, 화웨이에 왕좌를 내줬다. 아무리 잘 나가던 기업도 한 순간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냉혹한 글로벌 경제계다.

경제 전쟁의 시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그 시기보다 더 엄혹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재용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결정일까.

1년간 수형생활을 한 그를 1~2년 더 감옥에 두고 기뻐하는 게 옳을까. 백의종군의 자세로 기업에 전념해 글로벌경제 전쟁의 선봉장으로서 역할을 할 기회를 주는 게 옳을까. 이순신의 두번의 백의종군이 주는 역사적 의미를 곱씹어 본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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