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사람따라 기술도…'이탈·유출'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 2019.10.24 18:00

[기술유출 소송시대]①전문가들 "SK-LG 특허분쟁, 가이드라인 사례 될 것"

편집자주 |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용 배터리를 두고 LG, SK의 영업비밀 및 특허 소송전이 뜨겁다. 지금까지 제조업 소송사(史)가 '국가 대 국가'였다면 이제 '국내 기업간 기술유출 전쟁'이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이직과 기술유출 사이의 애매모호한 간극, 서로 다른 주장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만들 것인지 짚어본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 사진=유정수 디자이너

#. 현대기아차 기술 자료를 몰래 빼돌려 인도 회사에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협력업체 부사장 A씨. 서울중앙지법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차종 개발에 참고하겠다며 현대차 직원으로부터 기아차 '모닝' 관련 정보를 받아 인도 업체에 넘긴 혐의다.

#. 삼성전자에서 경쟁업체로 이직하기 전 반도체와 스마트폰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전무 B씨. 대법원은 최근 B씨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기술자료를 출력해 집에 보관한 것은 맞지만 문서를 모두 파쇄했고 자료를 집에서 검토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이직이냐, 의도적 기술 유출이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배터리(2차전지) 특허 소송이 불러온 '기술유출' 논란 이면에는 기업의 딜레마가 있다. 기술을 지켜야 하는 한편 인재를 얻어야 한다.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직은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에 따른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의도된 기술 유출은 분명한 범죄의 영역이다. 이직과 산업스파이, 그 모호한 간격의 어딘가에 우리 기업이 섰다. 미래지향적인 결론이 기업 생존과 건전한 산업생태계 구축을 담보한다.

특허와 기술 등 지식재산권이 기업의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존슨앤존슨, 머크(독일계 바이오기업) 등은 무형자산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무형자산은 특허 등 핵심 원천기술을 의미한다. 미국 S&P500은 지난 1985년 소속 기업들의 무형자산 중 지식재산권 비중이 10%에서 2010년에는 평균 40%대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수십조원을 호가하는 기업가치의 절반이 특허 등 기술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술유출은 기업에게 비수나 다름없다. 세계 시장이 급속도로 재편되면서 기술 유출은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과 점유율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견중소기업은 타격이 더 크다. 기술 유출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폐업에 이른 사례가 다수다. 대구 소재 부품기업 A사가 대표적이다. 합금강 전문기업으로 한때 시장 점유율 60%를 자랑했으나 전직 대표가 퇴사한 뒤 일본 경쟁사와 손잡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큰 손해를 본 A사는 최근까지 지리한 송사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는 이런 식의 국내외 기술유출 피해액이 연평균 5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반면 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평생직장은 해묵은 개념이 됐고 전문인력의 이직도 빈번해지고 있다. 인재를 찾는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이들의 업무능력과 지식이다. 머릿 속에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위해 사람을 뽑아야 한다.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등 첨단 신성장동력 확보에 매달리고 있는 국내 기업에게 기술 유출은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터진 SK와 LG의 특허소송은 변곡점이 될 수밖에 없다. 양사의 판례는 기술 유출 여부에 대한 판단의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기회로 기술유출 문제에 대한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기술 유출은 명백히 막아야 할 범죄행위지만 그렇다고 이직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원천기술의 국내 유출 뿐 아니라 해외 유출은 더 치명적 국부 유출에 해당하므로 이번 사안을 계기로 보다 세분화된 기술 유출 판단 및 예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의 확립은 새로운 시장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천기술은 그 자체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량한 스타트업들이 탄생하고 제대로 시장 가치를 인정받은 후 더 큰 기술이나 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세계 시장서는 일반적인 일이다. 구글은 몇년 전 변변한 매출도 내지 못하던 스타트업 네스트랩스를 인수했다. 오로지 150건의 온도조절장치용 원천특허를 사는데만 3조4000억원(32억달러)을 냈다. 지난해 IBM이 인수한 클라우드 데이터 기술 보유 기업 레드햇의 몸값은 39조원(340억달러)이었다.

이 교수는 "특허 관련 분쟁은 최근 구글과 우버의 자율주행 분쟁에서 보듯 해외서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구체적이고 정확한 기준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만 기술벤처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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