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더블로 가' 외치고 ‘머피의 법칙’ 합창…온라인은 지금 ‘과거 콘텐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9.10.16 04:30

유튜브·넷플릭스 등 온라인 플랫폼 ‘1990년대 콘텐츠 소환’…“잘 만든 뉴트로의 인기” VS “새로움 없는 과거 일기장 부채질”

'묻고 더블로 가' 한마디로 요즘 화제를 일으키는 김응수. 13년 전 영화 '타짜'의 한 장면으로, 복고 콘텐츠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아이돌그룹 비투비(BTOB)에 빠져있는 중3 딸을 둔 아버지 오모(45)씨는 차 안에서 DJ DOC의 ‘머피의 법칙’을 틀자, “또 듣고 싶다”는 딸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벌써 25년이 된 노래여서 편곡이나 리듬이 ‘구식’일 법한데도, 마치 오늘 나온 신곡처럼 귀를 기울였기 때문. 게다가 3번만 듣고도 첫 소절과 마지막 후렴구를 금세 따라 부르며 바로 인터넷 검색창을 뒤졌다.

40대 이상 중년층에게도 이런 상황은 고스란히 재현된다. TV 못지않게 영상 매체 대세로 떠오른 유튜브와 콘텐츠 강자 넷플릭스 등에 힘입어 ‘과거 콘텐츠’와 만날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자, ‘레트로’(복고풍) 감성이 폭발한 것이다.

10, 20대들의 ‘뉴트로’(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와 맞물려 수요가 늘어난 과거 콘텐츠들이 단순한 화제물로 그치지 않고 고정물로 전 세대 눈과 귀를 자극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온라인 탑골공원’은 90년대 TV 가요 프로그램 목록을 ‘새롭게’ 편집해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1994년 ‘가요톱10’ 방송 1위곡 모음 편은 120만에 가까운 횟수를 자랑한다.

곡 구성을 보면 015B의 ‘신인류의 사랑’, 미스터투의 ‘하얀겨울’, 김건모의 ‘핑계’,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 신효범의 ‘난 널 사랑해’,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등 한 번만 들어도 귀에 꽂히는 쉬운 멜로디와 따라부르기 쉬운 가사들이다.

1994년 '가요톱10' 중 김건모의 '핑계'. /사진=유튜브 캡처

중장년층에겐 잊힌 기억의 습작이고, 신세대에겐 숨은 명곡의 발견이다. 주로 40대 이상이 단 댓글엔 그리움과 슬픔이 오롯이 묻어난다. “‘하얀겨울’ 전주를 듣는데 눈물이 쏟아질 뻔” “추억이라 쓰고 그리움이라 읽고 고마움이라 말한다. 내 10대의 소중한 기억들” 같은 감상적 평이 대부분이다.

회사원 김모(22)씨는 “90년대 음악에선 ‘떼창’이 가능한 재미있고 따뜻한 멜로디가 많다”며 “지금 아이돌 음악보다 장르 면에서도 더 다양해 음악의 신세계 같다”고 말했다.

영상 쪽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미국 넷플릭스에서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본 콘텐츠는 지금 나온 새 시즌 드라마가 아닌 15년 전 방영된 ‘더 오피스’다. 2005년 미국 NBC에서 방영한 시트콤으로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의 7.19% 조회 수(미 리서치 업체 점프샷 집계)를 차지할 정도로 현재 ‘핫’한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2위를 차지한 콘텐츠 역시 1994년 미국 NBC 시트콤 ‘프렌즈’(4.13%)였다.

국내에서도 90년대 후반 평일 저녁 시간대를 점령한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 시리즈들이 재소환되며 웃음보따리 한 아름 풀어놓는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시트콤을 통해 신·구세대들이 새로운 웃음을 맛보는 셈이다.


화투판을 배경으로 ‘남자들의 양육강식’을 그린 ‘타짜’ 시리즈 1에서 김응수가 때아닌 인기 복병으로 떠오른 것은 이 한마디 때문이다. “묻고 더블로 가”. 13년 전 영화지만, 혼돈과 갈등의 세상에서 근사하게 정리하는 듯한 한 마디 대사가 신구세대에게 시원함을 안겨주며 새로운 유행어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신기술에 새로운 편집 역량이 과거 콘텐츠 소환에 성공적 행보를 담보한다고 본다.

미국 NBC 시트콤 '프렌즈' 출연배우들. /사진=페이스북 캡처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뉴트로 경향은 온라인으로 갔을 때 큐레이터들이 ‘어떤’ 걸 ‘왜’ 갖고 오느냐 당위성 문제를 취향과 연결하기 때문에 선택받기 쉬워진다”며 “새로운 즐거움이 증명되는 좋은 복고 콘텐츠에 대한 발굴이 음악과 영상을 넘어 다른 분야에도 점점 크게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90년대 문화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서태지와아이들의 탄생과 함께 음악에선 트로트와 포크 중심의 축이 다양한 장르로 산개하는 방향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틈새 문화, 비주류 문화에 대한 탐닉이 시작된 배경이 거론된다.

영화에선 ‘쉬리’(1998)를 시작으로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질과 수준을 높이는 콘텐츠의 혁명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지금 시대와 맞지 않은 어색함이나 촌스러움은 남아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알짜배기 콘텐츠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거 콘텐츠의 무한 확장에 대한 경계의 시선도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콘텐츠의 주 소비층인 40대를 향해 자신의 흐릿한 일기장을 되새김질하며 다시 구매하라고 부추기는 구조가 바람직한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기술이 진보하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콘텐츠와 만나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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