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우리는 금융후진국이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 2019.10.14 04:49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논란의 역사는 오래됐다. 1999년 외환위기 당시 대우채 소동부터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건, 2008년의 ‘키코 사태’, 그리고 2013년 ‘동양그룹 사태’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이다.
 
다시 불완전판매와 금융사기 논란이 뜨겁다. 이번에는 이름도 생소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과 관련해서다. 개인투자자 3600여명이 평균 2억원 안팎을 투자했다.
 
우리·KEB하나은행 등은 과거 독일 국채금리 등이 마이너스였던 적이 없던 사실을 감안해 예상수익률 3~4%대 파생상품을 팔았는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악화 등으로 해외금리가 급락하면서 지난달 말 기준 50% 정도의 손실을 내고 말았다.
 
이에 국회와 시민단체 금융당국까지 나서 금융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조사를 보면 분명 은행들의 잘못이 있다. 원금손실 등의 위험성을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경우가 드러났다. 근본적으로는 예상수익률이 3~4%에 불과한데 손실은 100%까지 나는 고위험·중수익 상품을 판매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고객들의 책임은 없는 걸까. 가장 큰 책임은 고위험·중수익 상품을 선택한 고객 자신이다. 이번 논란이 과거와 다른 점은 투자고객이 대부분 거액자산가란 점이다. 물론 평생 한푼 두푼 모은 재산을 은행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날려버린 안타까운 사례도 없지는 않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 은행의 경우 전체 거래고객 2000만명 중 1억원 이상 현금성 예금을 가지고 있는 고객은 22만명쯤 된다. 전체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그런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의 예금자산은 평균 5억원 정도다. 그렇다면 지금 DLF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사람은 대부분 0.1~0.01%의 부자란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DLF를 많이 판 한 은행의 경우 투자자의 절반가량이 ‘강남 3구’ 지점의 VIP고객들이다. 예금자산 5억원은 평생 마이너스통장과 주택담보대출을 안고 사는 보통사람들 기준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큰돈이다.
 
게다가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 투자고객 중 60% 이상이 재가입 고객이고, 투자자의 80%는 이와 유사한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이는 손실배상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 대부분이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통해 그동안 정기예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누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데도 은행이 물어줘야 하나.
 
불완전판매를 주장할 때 자주 등장하는 논리가 60대 이상 고령자들을 금융사가 속여 고위험 상품을 팔았다는 것이다. 이번 DLF 투자자들의 경우도 절반가량이 60대 이상이다. 과연 그럴까. 60~70대 투자자들이라고 해서 이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속아서 가입했다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비약이다. 이런 돈 많은 분들은 건강할뿐더러 투자지식과 정보가 젊은 사람 뺨친다.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국회와 시민단체까지 나서 0.1~0.01% 부자들의 손실을 물어주라고 압박하면 은행들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 평판과 신용으로 먹고사는데 시끄러워질수록 고객 이탈 등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또 VIP고객들의 경우 은행 기여도가 크기 때문에 손실을 전액 보상해주더라도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나쁠 게 없다.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은 금융후진국이다. 세상에 극소수 부자들의 투자손실까지 배상해주는 나라가 어디 있나. 평소엔 3~4%의 이자를 주고 손실이 나면 은행에서 배상해주는 그런 상품이 어디 없나. 단 가입한도가 DLF처럼 1억원 이상이 아닌 500만원, 1000만원인 상품 말이다. 진정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면 ‘광화문’이나 ‘서초동’으로 가지 말고 국회와 금융당국 앞으로 가서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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