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노딜’로 끝난 스톡홀름 실무협상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새 계산법’을 요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속내와 셈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의 충격을 만회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협상 틀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벼랑끝전술’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상 결렬 후 김 대사와 북한 외무성이 내놓은 대미 비난 성명과 발언을 종합해 보면 이번 협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북한이 협상 프레임과 비핵화 출발선의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협상 구도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보다 후퇴한 지난해 6.12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로 되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이 이미 단행한 여러 신뢰조치에 상응하는 행동에 미국이 나설 때 본격적인 비핵화 논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당시 핵실험 중단 등 선제 조치에 더해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제안하고 유엔 대북제재 핵심 결의안 5개의 해제를 요구했다. 이번엔 협상 단계를 더 잘게 쪼개 문턱을 추가로 높인 셈이다.
반면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하노이 회담 당시 북한에 제시했던 상응조치에 더해 ‘유연하고 창의적인 접근법’을 적용한 새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출발점을 하노이 회담 당시 북미간 합의점으로 삼고 북한이 비핵화의 ‘포괄적 합의’에 응할 경우를 전제로 일부 제재완화 등 새 구상을 추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신뢰 조성’ 단계와 ‘비핵화 논의’ 단계를 분리하고 협상의 틀과 출발선 재정립에 집중한 것 같다”며 “신뢰 조성 단계에서 못 지킨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협상 문턱을 높여 새 틀을 짜려는 접근으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고 수위의 요구와 압박으로 북한의 셈법을 관철하기 위해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에서 처한 정치적 위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재선 도전을 앞두고 연말부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지만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려 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이 미국 정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서둘러 실무협상 날짜를 잡은 측면이 있어 보인다”며 “미 대선 일정과 맞물린 연말 시한을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이끌어 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대사의 '끔찍한 사변' 발언도 핵실험 재개를 넘는 무력도발을 시사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유도하려는 의도된 대미 압박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북핵 문제가 미 국내 여론과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북한의 바람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의 강공 모드가 이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판을 깨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외교적 성과를 만들려면 반드시 ‘포괄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의지가 강하지만 북한에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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