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세종캠은 안돼"… 대학가 '조국 반대' 집회의 모순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임소연 기자 | 2019.09.28 07:36

학생들끼리 본·분교 가르고, '학벌=지위' 발언도…학생들 "집회 참여 설득력 떨어져"

편집자주 | 매일같이 수많은 사건과 이슈가 발생하고 사라집니다. 기사도 하루하루 사건과 이슈를 소비하며 지나가는데요. 머니투데이 사건팀이 한번 보고 지나치기 쉬운 사건과 이슈를 다시 한번 깊이 있고 시원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사'건과 '이'슈 '다'시보기(사·이·다)를 시작합니다.

이달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와 조 장관 딸의 입학 취소를 촉구하는 네 번째 촛불집회에서 학생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스1
요즘 서울대학교와 고려대, 연세대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 장관의 자녀를 둘러싸고 각종 특혜의혹이 이어진 탓입니다. 학생들은 총학생회 주도 여부와 상관없이 조 장관 규탄집회를 여는 등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데 한창입니다.

그런데 최근 고려대 커뮤니티에서 불미스러운 잡음이 하나 일었습니다. '조국 법무부장관 규탄' 집회 집행부에 세종캠퍼스(세종캠) 재학생이 참여한 사실을 두고 학생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난 것인데요. 학교 안팎에선 "계급세습을 비판하는 집회를 준비하면서 계급의식을 드러낸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연은 20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려대 집회 참가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는 19일 진행된 '조 장관 사퇴 촉구' 4차 집회 집행부에 세종캠 학생이 1명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세종캠 학생의 집행부 참여에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은 "안암캠 입학처 대상 집회를 왜 세종캠 학생이 주최하냐"며 "세종캠 입학처에서 입시비리가 일어났다고 안암캠 학생들이 집회를 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이번 집회는 입시비리로 실추된 학교의 명예 회복"이라며 "재학생, 졸업생, 지방캠, 대학원생 등 학교와 인연이 있으면 집행부 참석도 가능하다"고 반박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채팅방을 만든 방장은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110여명이 있던 방에서 투표에 참여한 학생은 16명. 이 가운데 10명이 참여를 찬성했습니다.

이후 방장은 "분교(세종캠) 학우 집행부 참여를 반대하겠다"며 찬성표를 던진 채팅방 구성원들을 강제로 내보냈습니다. 이에 다른 학생들이 반발하자 방장은 반발하는 학생들도 모두 강제퇴장시키고 결국 대화가 사라진 유령채팅방이 됐습니다.


고려대 안팎 학생들은 이 갈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고려대처럼 본·분교가 나뉜 타대학에 재학 중인 최모씨(27)는 "나보다 더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은 특권을 휘두르는 거로 보면서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동급 취급되는 게 싫은 게 아닐까"라며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가 위 아래 모두로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대학 재학생 양모씨(26)는 "분교는 달라서 같이 하기 싫다는 것도 특권의식 아닌가"라며 "일부의 의견이겠지만 대학생 모두 생각해볼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고려대 재학생 A씨는 조 장관 규탄 집회 제안글을 놓고 "학벌을 곧 '누릴 수 있는 지위'라고 표현한 내용이 불편하다"며 "특권계층의 계급세습을 비판하는 집회에서 학벌 계급을 공고히하는 논리를 내세우며 집회를 참여하라고 하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4차 집회 집행부가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 올린 글에서 '조 장관의 딸이 어떤 자격과 실력과, 노력으로 그(고려대생의)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지 알아야한다'는 표현이 못내 불편하다는 얘기입니다.

조 장관의 불공정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기초적인 민주주의 원리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이러니를 연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세 학교가 추진하는 전국 대학생 집회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조 장관의 부적절한 행보를 지적하지만 학교와 학벌에 따른 지위를 운운하는 모습 역시 찬성하기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온라인에서 뜨거운 조 장관의 규탄 목소리가 오프라인에선 다소 초라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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