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2019 KEB 하나은행 FA컵 준결승 1차전. K리그 1부 리그 구단 수원 삼성이 4부 리그 격인 K3리그 화성FC에 0-1로 패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수원 삼성에 비수를 꽂은 선수는 바로 얼마 전까지 동고동락했던 옛 팀 동료 문준호(26·MF)였다. 전반 24분 문준호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감아 찬 오른발 슈팅이 수원 골망에 꽂혔다. 결국 이 골은 결승골이 됐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 앞에 선 문준호는 "저 원래 인기 없는데 진짜"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수원 삼성을 상대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를 갈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준비 잘해 보여줄 것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문준호가 수원을 상대로 이를 악 물었던 이유. 바로 수원 삼성에서 방출된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암고와 용인대를 졸업한 그는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출전했다. 또 신태용 감독이 이끌던 23세 이하(U-23) 대표팀에도 발탁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문준호는 지난 2016년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하지만 1군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주로 R리그에서 뛰었다. 2016년 R리그에서는 13경기서 3골을 넣었다. 그러다 2018년 FC안양으로 임대됐고, 5경기에 나서 1골을 터트렸다. 지난해 말 수원 삼성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그는 올해 화성FC에 입단해 활약하고 있다.
문준호는 "수원에서 보여준 게 없다. 축구 인생에서 힘든 시기였다. 이날 경기로 복수 아닌 복수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며칠 전) 수원에 있는 형들과 연락했다. 처음에는 핀잔을 들었다가, '우리 이렇게 연락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장난스럽게 나눴다"면서 "'서로 멋진 경기 해보자' 이야기를 했다"고 웃었다.
이제 화성FC는 내달 2일 오후 7시 30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2차전 원정 경기를 치른다. 문준호는 "빅버드에서 데뷔전 한 차례만 치른 뒤 이후 엔트리에만 들고 경기엔 출전하지 못했다. 수원에 저라는 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2차전 준비 잘하겠다"며 특별함이 가득한 각오를 다졌다.
인터뷰를 마친 뒤 문준호는 지인 및 팬들과 다정하게 사진 촬영에 응했다. 순간, 침묵에 휩싸였던 수원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문준호의 옛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복도에서 문준호와 수원 선수들이 마주쳤다. 문준호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그런 문준호를 본 수원의 옛 동료들은 말없이 그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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