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노벨 법학상은 왜 없나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9.09.06 04:45
노벨상에 법학 분야가 있다면 누가 수상할까라는 질문은 법학교수들 사이에서는 좋은 담론거리다. 답은 바로 나온다. 미국의 리처드 포스너 판사다. 그다음은 하버드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다.
 
1901년 제정된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와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6개 분야에서 주어진다. 여기서 같은 사회과학인 경제학상이 있는데 법학상이 있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제일 많다. 또 경제학상은 앨프리드 노벨의 1895년 유지에 따라 만들어진 상이 아니고 1969년 스웨덴 중앙은행 창립 300주년 기념이란 다소 특이한 이유로 제정됐다.
 
법학이 인류문명의 발달에 공헌하기 때문에 법학상을 제정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논지는 이렇다. 우선 법학은 실용학문이고 이론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법학자를 학자로 볼 수 없다. 다음으로 법학은 독자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갖추지 못해 ‘과학’의 범주에 넣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법학의 연구대상인 법률은 속지적이어서 법학은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다.
 
종래 이런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법경제학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경제학이 과학이듯이 법학도 과학인 시대다. 포스너, 선스타인 둘 다 법경제학자다. 법학은 이론학문이 되었고 과학적인 방법론도 갖추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세계 각국의 법률이 동조화하고 있어 법률의 연구도 보편성을 띤다.
 
오래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사주간지 ‘네이션’(The Nation)이 법학 분야, 내지는 법률 분야에도 노벨상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세계 도처에서 핍박받는 인권운동가나 사회운동가 중 법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노벨 법학상을 주면 그 행동의 가치가 국제적으로 인정됨과 동시에 일종의 보호장치가 된다. 노벨상 수상자는 전 세계적 존재감을 가지므로 특정 정부가 세계 여론에 맞서기 어려워진다. 수상자가 어떤 가치와 행동을 대변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둘째, 경제학상과 유사한 이유로 법학상을 받으면 수상자는 법률 분야에서뿐 아니라 공공정책이나 사회 문제 전반에 관해 광범위하게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고,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다. 이 측면에서는 아마도 경제학보다 법학이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사실 노벨 평화상이 이미 그런 역할을 한다. 평화상은 그 속성상 정치인이나 인권 및 사회활동가에게 잘 주어진다.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중엔 법률가 출신이 많다. 2009년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14인의 평화상 수상자가 유의미한 법률가 출신이다.
 
그러나 평화상이 있다고 해도 법학상 내지는 법률상이 별도로 필요한 이유는 많다. 특히 법학상이 어렵다 해도 법률상은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유력한 수상후보다. 법을 통한 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기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했듯이 평화는 정의의 실현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ICC는 칸트 이래 법사상가들과 개혁가들이 오랫동안 꿈꾼 기관이다. ICC가 노벨상을 받는 순간 ICC를 약화하려는 시도에는 제동이 걸린다.
 
법률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법경제학과 실증 국제법학이 잘 증명해놓았다. 세계 각국에서 권위주의체제가 속속 들어서고 호전적 팽창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재부상하는 요즈음 법률이 세계 평화에 더 기여하라는 의미에서 노벨 법학상이 제정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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