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모르게 '호의'가 베풀어졌다는 얘긴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 후보자 딸이 공부가 버거워 포기하려 하자 개인 장학금을 주며 격려했다. "열심히 한 게 기특해서" 석박사 연구원을 제쳐 두고 고등학생을 논문 1저자에 올려준 교수도 있었다. 조 후보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며 고개를 숙였다.
왜 어떤 아버지들의 안이함과 불철저함은 그 자녀들에게 호의와 배려로 이어지는가. 대다수 청년은 몸부림쳐도 잡히지 않던 기회들이, 왜 누군가는 가만히 있어도 '호의'라는 이름으로 굴러들어오는가.
지난달 27일 이석채 전 KT 회장 재판을 지켜본 몇몇 KT 관계자들은 휴정시간 "설령 김 의원 딸을 채용했더라도, 사기업의 결정을 (국가가) 어떻게 처벌하느냐"는 불만의 말을 주고받았다.
과연 그런가. '누군가의 자녀'라서 주어지는 호의는 사사롭든 어떻든 결국 쌓여 특권과 반칙이 된다. 그 특권과 반칙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그 호의에 대한 대가를 돌려주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그 대가가 자신의 주머니가 아닌 공직자로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준다는 데 있다.
김성태 의원에겐 아직 재판부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고 조국 후보자에 대해선 인사청문회와 검찰 수사가 남아 있다.
권력을 가진 자의 주변에 베풀어지는 '어떤 호의'가 '위법이 없다' 결론 나면 끝날 일일까. 흙수저들은 좀 떠들다가 다시 조용히 입 다물어 주면 될 일인가.
어느 사회에나 금수저, 흙수저는 있다. 하지만 계층이 계급으로, 균열이 분열로 이어지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이른바 '사회적 지도층'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가꿀 책무의 최선봉에 있다. '무거워도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다'며 한사코 짊어진 지도층의 자리 아닌가. 버겁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