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010'이라 받았는데… 더 진화한 보이스피싱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이학렬 기자, 이영민 기자, 박종진 기자, 임지수 기자, 박광범 기자, 변휘 기자 | 2019.08.29 06:30

[보이스피싱,영혼을 파괴한다](종합)

편집자주 |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어눌한 조선족 어투는 한때 개그의 소재가 될 정도로 우스웠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은 알고도 당할 만큼 첨단화되고 지능화됐다. 피해자들은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피해자의 숫자와 규모도 매년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만큼 급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돈 있어서 뺏기고 돈 없어서 당한다


[보이스피싱, 영혼을 파괴한다]하루에 134명, 12억원 당해…올해 상반기 피해액 작년 전체의 70%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A씨(48세)는 지난 3월 본인이 사용한 적이 없는 신용카드 해외결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확인을 위해 문자메시지에 기재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전화 상담원은 A에게 "명의가 도용된 것 같으니 대신 경찰에 신고해 주겠다"며 "경찰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안내했다. 잠시후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사기범)이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A씨 명의로 발급된 계좌가 범죄자금세탁에 이용됐으니 모든 계좌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휴대폰에 원격조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사기범은 A씨의 휴대폰을 원격조종해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카드론 대출을 실행하고 "정상적으로 이체되는지 시험해보겠다"며 A씨에게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해 다른 계좌로 4900만원을 이체했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보이스피싱에 당한 피해자는 4만8743명, 금액이 4440억원에 달했다. 피해액은 전년대비 83% 급증했다. 하루 평균 134명이 12억원에 달하는 생돈을 범죄조직에게 뜯긴 셈이다.

정부가 작년말 범부처 합동 대책을 내놨지만 올해 피해규모는 작년을 넘어설 상황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3056억원이다. 작년 전체 피해액의 약 70%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가 피해예방 홍보에 나서고 경찰이 집중단속에 들어가면서 6월부터는 증가세가 주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추세면 올해도 '사상 최대 피해'는 불가피하다.

◇돈 없어서 뜯기는 사람들..피해 70%는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조직에 돈을 뜯기는 사람들은 평소 여유돈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노린 사기가 더 많다.

작년 피해액의 69.7%에 달하는 3093억원이 이런 '대출빙자형'이었다. 대출빙자형은 신규 대출 또는 저금리 전환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여서 대출금이나 수수료를 뺏어가는 방식이다. 대출빙자형 사기는 자금수요가 많은 40~50대와 사회초년생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20~30대를 주로 노린다.

'가짜 대출 유혹에 왜 바보같이 속을까' 싶지만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속일 정도로 범죄조직의 수법은 진화했다. 실제로 정부는 전화나 문자로 대출권유를 받으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반드시 금융회사의 실제 존재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의 휴대폰에 '전화 가로채기' 앱을 설치토록 유도하고 보이스피싱이 의심스러워 해당 금융기관에 확인전화를 걸면 범죄조직이 그 전화를 가로채 안심시키는 수법이다.

◇돈 있어서 뺏기는 사람들..'사칭형' 피해 급증=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빙자 사기에 당한다면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칭형' 사기의 주 타깃이다.

사칭형은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거나 SNS, 메신저를 통해 가족 등 지인으로 가장해 금전을 편취하는 방식이다. 작년 사칭형 피해는 1336억원이었다. 대출빙자형에 비해 피해액은 적지만 전년대비 증가율은 116.4%로 대출빙자형(71.1%)보다 크게 높았다. 50대 이하가 대부분 대출빙자형에 당한 것과 달리 60대 이상 피해자의 절반 이상(54.1%)은 사칭형 피해를 입었다.

최근엔 SNS를 활용한 메신저피싱이 급증하고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타인의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로그인한 뒤 등록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금전을 탈취하는 신종 범죄수법이다. 작년 피해건수는 전년대비 582.4%, 피해액은 272.1% 폭증했다. 특히 자녀, 조카 등을 사칭해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하는 등 50~60대를 겨냥한 메신저피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칭형이 고령층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작년 20~30대가 사칭형 피싱을 당한 금액도 371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이 지난해 9월 대학생 13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검찰이나 금감원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준다"고 잘못 알고 있는 비율이 35.2%나 됐다. 사칭형 보이스피싱의 대표적인 수법이 검찰이나 금감원이 안전하게 보관해줄테니 돈을 보내라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누가 바보같이 보이스피싱에 속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노출돼 있는 범죄"라며 "특히 20대의 피해가 급증하는 등 전 연령에 걸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형 기자



대포통장에서 가상자산 지갑으로…진화하는 보이스피싱


[MT리포트-보이스피싱,영혼을 파괴한다]가상자산 통해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계좌 대여 등 주의 당부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보이스피싱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ATM(자동화기기)로 돈을 인출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상자산(암호화폐)를 활용해 피싱한 돈을 현금화하는 단계까지 왔다.

보이스피싱의 전형적인 방법은 사람을 속여서 대포통장에 돈을 보내게 한 다음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ATM에서 돈을 빼내는 것이다.

하지만 대포통장을 구하는 것은 물론 ATM에서 돈을 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016년부터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해 100만원 이상 입금된 통장에서 ATM을 통해 출금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연인출제도’가 시행된 것은 특히 결정적이었다. ATM 등을 통한 이체를 막는 ‘지연이체제도’도 시행되고 있어 여러 계좌를 통한 돈세탁은 일단 막혀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되는 거래를 찾아내기 위해 AI(인공지능)도 활용하고 있다. 딥러링 기술을 적용해 보이스피싱 피해 거래 패턴을 스스로 학습해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를 찾아낼 수 있다.

돈을 빼내기 어려워지면서 보이스피싱 범죄 집단이 최근에 많이 활용한 것은 가상자산이다.즉 대포통장 대신 가상자산 거래사이트 계좌를 활용해 돈을 빼 돌리는 방식이다. 은행 계좌와 달리 가상자산 지갑은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금세탁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사이트들이 ‘계좌에 돈을 입금해줄테니 대신 가상자산을 매수해 전송해주면 수수료를 주겠다’고 접근하거나 ‘대출할 때 가상자산 거래실적 등을 쌓으면 저리 혜택을 준다’고 유인하는 건 모두 금융사기다. 물론 이렇게 하라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계좌 대여는 끊이지 않는다.

신한은행이 지난 6월말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에는 이같은 가상자산이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1년간 보이스피싱이 상당량 증가했는데 가상자산 거래사이트 계좌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때문이다. 이에 신한은행은 가상자산 거래사이트에 강력한 피해 방지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신한은행 계좌를 이용해 가상자산 거래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후오비코리아는 보이스피싱 등 불법 자금으로 의심되면 100일 이상 동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팍스 역시 최대 30일까지 출금을 보류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사이트 계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검토중”이라며 “거래사이트 계좌 거래 분석을 전담하는 직원을 배치해 모니터링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도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4일 '전행적 소비자보호 강화 및 대포통장 감축 TFT' 발대식을 개최했다. 특히 TFT에는 IT 인력이 대거 합류해 빅데이터 분석, AI 적용 등 최신 기법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스마트뱅킹에 보이스피싱 악성앱 탐지 솔루션을 적용했고 IBK기업은행은 AI를 활용해 보이스피싱을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IBK피싱스톱'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학렬 기자



본거지는 해외에…중국 의존 불가피한 피싱 수사


[보이스피싱, 영혼을 파괴한다]범죄 검거율 늘지만 몸통 소탕 어려움…"해외 경찰과 공조조약 체결 필요"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영화 '범죄도시' 속 조선족 범죄조직 모델 '흑사파'가 만든 보이스피싱 일당이 이달 6일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총책 등 11명은 흑사파의 지시를 받고 한국에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전체 조직원은 20명이지만 중국에 머물고 있는 흑사파 조직원 9명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나머지 조직원의 소재도 파악했지만 중국 공안에 공조수사를 요청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경찰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단속 강화에도 사건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빠르게 진화하는 범죄 수법도 문제이지만 보이스피싱 조직 본거지가 해외에 있어 국제공조수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점이 수사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건수는 2014년 2만2205건에서 2016년 1만7040건으로 감소했다가 다시 2017년 2만4259건, 2018년 3만4132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1만9828건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 1만6338건에 비해 21.4% 증가했다.

수사기법의 발달로 범죄 검거율도 늘고 있지만 잡아들이는 조직원 대부분이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현금인출책 등 말단이다. 해외에 거점을 둔 전체 조직 검거나 '머리' 검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콜센터·통장모집책·인출책·송출책 등이 점조직 형태로 구성됐다. 주로 총책과 콜센터 조직원은 해외에 거주하고 통장모집책·인출책·송출책 등은 국내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한다. 인출책 등 말단을 검거해도 콜센터 조직원 이상급 몸통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콜센터 조직원이 중도에 조직에서 빠져나와 경찰에 붙잡히면 조직 소탕에 큰 단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피해액 68억원 규모 보이스피싱 3개 조직을 소탕한 사건에서는 콜센터 조직원의 자수가 수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콜센터 조직원을 통해 본거지 위치 등 정보를 알아내도 해외 현장에서 검거가 안 되면 조직 소탕은 불가능하다. 조직을 현장에서 적발하는 현지 경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전담 경찰들은 보이스피싱 수사의 핵심이 국제공조수사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 관계자는 "중국 공안 등 외국 경찰의 협조가 수사 성공의 관건"이라며 "외국 경찰이 협조에 응해주지 않으면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경찰이 공조수사를 적극 요청해도 해외 경찰이 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관계자는 "자국민 피해가 없으면 적극 협조하지 않는다"며 "보이스피싱 조직 본거지가 대체로 부패가 심한 국가에 있다 보니 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가족·지인이거나 상납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수사의 해외 경찰 의존도를 낮추려면 국내 수사기관이 해외에서 직접 수사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주요 거점 국가와 범죄인인도조약 및 형사사법공조조약을 체결하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필리핀이나 베트남처럼 현지에 한국인 경찰 혹은 한국인 사건 전담을 배치하는 '코리안데스크' 제도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민 기자



나는 보이스피싱, 기어가는 법망


[the300]범죄수익 국가 몰수 법안은 국회통과…대포통장 처벌강화 법안 등 정무위서 낮잠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노력이 계속되지만 법안 통과는 더디다. 법 개정은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두 가지 축으로 진행돼왔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대표적 보이스피싱 대응 법안은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이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제출해 이달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다단계판매, 유사수신 등 사기 범죄를 국가의 범죄 수익 몰수·추징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그동안 국가가 몰수할 수 있는 부패 범죄 수익 대상 중에는 이 같은 사기죄로 인한 피해 재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 법에는 횡령죄나 배임죄 피해 재산만 범죄 피해 재산으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해도 피해금액을 되찾기 위해서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걸어야 했다. 복잡하고 시간이 걸려 피해자들이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보이스피싱 대책 법안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 3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1건 등이다.


우선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2월 대표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처벌강화에 방점이 찍혔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가능케 하는 대포통장 거래를 엄격히 규제한다.

대포통장 유통을 알선·광고하는 행위뿐 아니라, 중개하거나 대가를 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권유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처벌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역시 전해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도 대포통장 근절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돼 금융거래가 묶였다가도 풀리면 다시 보이스피싱에 쓰이는 사례를 막기 위해 사기이용계좌의 명의인이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3년,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을 선고받으면 5년간 전자금융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또 2017년 1월 이용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를 규제하는 법안이다. 현재 수사당국 등은 보이스피싱 전화번호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넘겨 이용중지(전기통신역무 제공의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약관으로 '3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이용중지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중지기간이 짧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정안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1년 이상 3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이용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한다.

이밖에 지난해 10월 이학영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법 적용 대상인 '금융회사'의 범위에 '전자금융업자'를 추가하자는 내용이다. 최근 핀테크를 활용한 전자금융거래가 증가하면서 신종 보이스피싱이 등장하는데, 현재 법 적용 대상인 금융회사에는 전자금융업자가 포함되지 않아 피해자들에게 이 법에 따른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모두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날 선 여야 대립으로 정무위가 장기간 파행을 이어가면서 처리 못한 법안들이 쌓였고 보이스피싱 관련 법안들도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하는 상태다.

박종진 기자



해외서 걸려온 '010'…보이스피싱 번호변작 못 막나


[보이스피싱, 영혼을 파괴한다]

#직장인 김모씨는 얼마전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가 깜짝 놀랐다. 상대방은 자신이서울 중앙지검 검사라며 김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가던 김씨는 곧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화를 끊었지만 '010'으로 뜬 번호를 믿고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치밀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070' 대신 '010'이나 '02' 등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부가 발신번호 변작 사전 차단 등으로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에 나서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부분 국내에서 인터넷 전화에 가입, 근거지를 두고 있는 해외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전화를 건다. 이 경우 발신번호 앞자리는 '070으로 표시돼야 하지만 '070'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번호를 변작하는 기술이 동원되고 있는 것. 지난 3월 경찰에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경우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010' 번호로 조작하는 서버 관리팀까지 두고 전화사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이처럼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번호가 국내 번호로 변작되면서 현재 검찰 등 공공기관의 전화번호로 조작하는 경우 미리 기간통신사업자 시스템에 등록해 변작을 사전 차단하는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또 사전 차단이 어려운 별정통신사의 경우 정기적으로 발신번호 변작 신고가 많이 접수된 통신사들 대상으로 점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번호가 아닌 일반 전화번호로 변작하는 것까지 사전에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는게 과기정통부의 설명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용자 편익을 위한 합법적인 번호 변경의 경우 등도 있어 검찰 등 공공기관이 아닌 일반 번호로 변경하는 경우를 포함해 모든 변경 번호를 차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 사전 관리가 어려운 별정통신사가 범죄에 연루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범죄 연루가 확인될 경우 보다 강력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지수 기자



'앗, 보이스피싱이었어?'…신속한 '지급정지'가 생명


[보이스피싱, 영혼을 파괴한다]지체 없이 경찰이나 금융사에 연락해 '지급정지' 요청해야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돈을 이체한 경우에는 사기범이 돈을 인출하지 못하도록 지체하지 말고 경찰이나 금융회사에 전화해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지급정지 요청 후 경찰서에 방문해 피해신고를 하고, 금융회사에는 '피해금 환급 신청'을 해야 한다.

지급정지된 계좌는 피해자가 풀어주지 않으면 인출을 할 수 없다. 혹은 수사기관에서 보이스피싱 관련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 하거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 전까진 거래가 불가능하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지급정지 요청 전까지 해당 계좌에 피해금이 인출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피해금 환급제도'에 따라 별도의 소송절차 없이 피해금을 되찾을 수 있다. 보이스피싱 사기 인식 후 재빨리 지급정지 요청을 해야 하는 이유다.

금융회사들이 착오송금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지연이체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최근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을 통한 송금 시 돈을 받는 사람 계좌에 일정 시간이 지나 입금되는 지연이체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보이스피싱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경우 지연이체서비스를 이용해 돈을 이체하면 최소 3시간 이후 수취인에게 입금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보이스피싱임을 확인한 뒤 이체 거래를 취소할 수 있다.

최근 중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해외 IP 차단 서비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해외 인터넷주소(IP)를 이용한 계좌로는 돈을 이체할 수 없는 서비스다.

한편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해선 사회적 관심을 통한 '예방'이 최우선 해결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다각적인 대책 마련과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 금융회사들의 사기 예방 활동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고객들의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KB국민은행은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전담조직'을 운영 중이고, 우리은행은 스마트뱅킹 앱에 보이스피싱 악성앱 탐지 솔루션을 적용해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고 있다. IBK기업은행도 통화 도중 보이스피싱 사기 확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경고 음성과 진동으로 알려주는 'IBK피싱스톱' 앱 서비스를 출시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서비스를 잘 활용하면 보이스피싱 피해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광범 기자



보이스피싱 막은 은행원들 '그때 그순간'


[보이스피싱, 영혼을 파괴한다]'시간끌고, 확인하고, 신고하고' 팀워크 빛난 인출책 검거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보이스피싱 범죄와 최일선에서 마주하는 직군 중 하나는 은행원이다. 당황한 고객을 설득하며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인출책 검거에 조력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 공로로 표창받은 은행원들의 공통된 바람은 "고객의 신뢰"다. 보이스피싱 예방 노하우를 가진 은행원을 신뢰하는 게 피해를 막는 첫걸음이란 지적이다.

우리은행 잠실역금융센터는 최근 두 달 사이에만 보이스피싱 피의자 두 명을 검거하고, 한 고객의 피해를 막는 성과를 올렸다.

가까이는 지난 26일 사기범의 꾐에 넘어가 돈을 찾으려던 고객의 소중한 자산 5000만원을 지켜냈고, 지난달 10일과 12일에는 연달아 보이스피싱 인출책 검거에 기여했다.

잠실역금융센터 이정희 과장에 따르면, 세 건의 사례 모두 범죄를 눈치챈 창구 직원의 기지, 문제를 확인하고 발 빠르게 경찰에 신고한 동료 직원들의 "'팀워크'가 빛을 발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지난달 10일 영업점을 방문한 인출책은 현금 600만원을 출금하려 했지만, 100만원 이상 금액은 입금 후 30분 내 ATM(자동입출금기)에서 찾을 수 없는 지연 인출 제도 때문에 창구를 찾았다.

인출책이 "내 돈을 왜 내 맘대로 못 찾느냐"며 흥분해 이의를 제기하자, 창구 직원은 고객을 달래면서 평소 입출금 거래가 드문 계좌임을 확인한 뒤 동료에게 '인출책 같다'는 메신저를 보냈다.

이에 동료는 거래 내용을 재확인해 범죄를 확신하고 현금 용도와 '누구에게 부탁받았는지' 등을 질문하며 시간을 끌었으며, 그 사이 이 과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인출책을 검거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예방은 은행 직원 간 협조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KB국민은행은 본부와 영업점의 '공조'로 이미 사기범 계좌에 넘어간 고객 돈 3000만원을 찾기도 했다.

지난 6월 이철호 소비자보호부 팀장은 의심 거래를 포착하고 피해자 B씨에게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기범 일당이 미리 B씨 휴대폰에 해킹 앱을 설치해 국민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이 팀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B씨에게 전화해 범죄 사실을 알렸지만, '저리대출' 미끼에 속은 B씨는 카드론 3000만원을 받아 이미 사기범 계좌에 송금한 상태였다.

이에 이 팀장은 가까운 영업점에 방문할 것을 조언했고, B씨를 응대한 문정파크하비오지점 문효석 부지점장은 거래 내역을 조회해 범죄를 확인한 뒤 대포통장 동결을 요청했다. 사기범의 출금 직전이었다.

보이스피싱 대응 노하우는 '베테랑' 은행원의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월 입행, 6월 영업점에 배치받은 NH농협은행 오창벤처프라자지점 안대희 수습계장은 이달 8일 고객 자산 2000여만원을 지켜냈다. 20대 남자고객 C씨가 지점을 방문해 정기적금 840만원과 청년우대주택청약저축 1100만원을 해지해 달라고 했지만, 안 계장은 '현금으로만 달라'는 요청에 범죄를 직감했다.

매뉴얼에 따라 고객에게 '금융사기예방체크리스트' 작성을 요구하며 피해를 설득한 안 계장은 곧바로 관련 계좌를 지급정지 처리했다. 안 계장은 "신규 직원 교육에서 금융사기예방체크리스트 활용 등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받았고, 이를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기범을 잡고 고객 돈을 지킨 은행원들은 한목소리로 고객의 협조를 당부했다. 금융 거래는 속도만큼이나 안전이 중요한데, 고객이 '빨리 처리하라'며 재촉하면 급한 마음에 은행원도 의심 거래를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직원은 "의심 거래 확인 결과 범죄가 아닐 경우 '감히 나를 의심하느냐'며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며 "은행원 입장에선 '의심이 들어도 규정만 지킨다면 처리하는 게 낫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과장은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보호하는 것도 은행원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고객들께서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거래 과정에서 은행원들의 범죄 예방 조치를 신뢰하고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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