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보이스피싱, 돈 있어서 뺏기고 돈 없어서 당한다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 2019.08.28 17:31

[보이스피싱, 영혼을 파괴한다]하루에 134명, 12억원 당해…올해 상반기 피해액 작년 전체의 70%

편집자주 |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어눌한 조선족 어투는 한때 개그의 소재가 될 정도로 우스웠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은 알고도 당할 만큼 첨단화되고 지능화됐다. 피해자들은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피해자의 숫자와 규모도 매년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만큼 급증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A씨(48세)는 지난 3월 본인이 사용한 적이 없는 신용카드 해외결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확인을 위해 문자메시지에 기재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전화 상담원은 A에게 "명의가 도용된 것 같으니 대신 경찰에 신고해 주겠다"며 "경찰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안내했다. 잠시후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사기범)이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A씨 명의로 발급된 계좌가 범죄자금세탁에 이용됐으니 모든 계좌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휴대폰에 원격조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사기범은 A씨의 휴대폰을 원격조종해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카드론 대출을 실행하고 "정상적으로 이체되는지 시험해보겠다"며 A씨에게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해 다른 계좌로 4900만원을 이체했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보이스피싱에 당한 피해자는 4만8743명, 금액이 4440억원에 달했다. 피해액은 전년대비 83% 급증했다. 하루 평균 134명이 12억원에 달하는 생돈을 범죄조직에게 뜯긴 셈이다.

정부가 작년말 범부처 합동 대책을 내놨지만 올해 피해규모는 작년을 넘어설 상황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3056억원이다. 작년 전체 피해액의 약 70%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가 피해예방 홍보에 나서고 경찰이 집중단속에 들어가면서 6월부터는 증가세가 주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추세면 올해도 '사상 최대 피해'는 불가피하다.


◇돈 없어서 뜯기는 사람들..피해 70%는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조직에 돈을 뜯기는 사람들은 평소 여유돈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돈일 필요한 사람들을 노린 사기가 더 많다.

작년 피해액의 69.7%에 달하는 3093억원이 이런 '대출빙자형'이었다. 대출빙자형은 신규 대출 또는 저금리 전환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여서 대출금이나 수수료를 뺏어가는 방식이다. 대출빙자형 사기는 자금수요가 많은 40~50대와 사회초년생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20~30대를 주로 노린다.

'가짜 대출 유혹에 왜 바보같이 속을까' 싶지만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속일 정도로 범죄조직의 수법은 진화했다. 실제로 정부는 전화나 문자로 대출권유를 받으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반드시 금융회사의 실제 존재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의 휴대폰에 '전화 가로채기' 앱을 설치토록 유도하고 보이스피싱이 의심스러워 해당 금융기관에 확인전화를 걸면 범죄조직이 그 전화를 가로채 안심시키는 수법이다.



◇돈 있어서 뺏기는 사람들..'사칭형' 피해 급증=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빙자 사기에 당한다면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칭형' 사기의 주 타깃이다.

사칭형은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거나 SNS, 메신저를 통해 가족 등 지인으로 가장해 금전을 편취하는 방식이다. 작년 사칭형 피해는 1336억원이었다. 대출빙자형에 비해 피해액은 적지만 전년대비 증가율은 116.4%로 대출빙자형(71.1%)보다 크게 높았다. 50대 이하가 대부분 대출빙자형에 당한 것과 달리 60대 이상 피해자의 절반 이상(54.1%)은 사칭형 피해를 입었다.

최근엔 SNS를 활용한 메신저피싱이 급증하고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타인의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로그인한 뒤 등록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금전을 탈취하는 신종 범죄수법이다. 작년 피해건수는 전년대비 582.4%, 피해액은 272.1% 폭증했다. 특히 자녀, 조카 등을 사칭해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하는 등 50~60대를 겨냥한 메신저피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칭형이 고령층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작년 20~30대가 사칭형 피싱을 당한 금액도 371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이 지난해 9월 대학생 13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검찰이나 금감원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준다"고 잘못 알고 있는 비율이 35.2%나 됐다. 사칭형 보이스피싱의 대표적인 수법이 검찰이나 금감원이 안전하게 보관해줄테니 돈을 보내라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누가 바보같이 보이스피싱에 속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노출돼 있는 범죄"라며 "특히 20대의 피해가 급증하는 등 전 연령에 걸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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