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가마우지와 펠리컨

머니투데이 세종=권혜민 기자 | 2019.08.19 03:20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주력 수출 상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대일의존이 심해 완제품 수출이 늘수록 대일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2011년 9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부품·소재산업 육성 10년, 그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01년 '부품·소재 특별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설명한 자료였다. 당시 정부는 부품·소재 수출이 늘고 무역수지 흑자폭이 커진 점은 '빛'으로 자랑했지만 여전히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그림자'도 지적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자'는 국내 소재·부품 산업에 드리워 있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온 나라가 소재·부품 국산화를 외치기 시작한 게 그 증거다. 우리는 일본이 수출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당장 반도체 공장이 멈출 수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확인했다. 한국은 이미 1989년 '가마우지 경제'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기술자립의 묵은 과제를 풀지 못했다. 새의 목에 끈을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 뒤 가로채는 '가마우지 낚시'처럼, 수출을 많이 해도 정작 이득은 일본에 뱉어내야 하는 가마우지 신세로 살았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누구보다도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이다. 성 장관은 정부가 소재·부품 산업 육성 드라이브를 걸던 2001년부터 2년간 일본 경제산업성에 파견 근무하며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을 현장에서 보고 살폈다. 그런 그가 '가마우지' 산업 구조를 '펠리컨'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펠리컨은 먹이를 부리주머니에 저장해두고 새끼에게 먹인다. 먹을 것을 삼키지 못해 남에게 주는 게 아니라 산업에 부가가치를 유입해 파급효과를 더욱 키워내겠다는 얘기다.


전 국민이 '극일'로 뭉쳤다. 대기업·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일본에 기대어 온 산업 구조를 뒤집어 보자며 나섰다. 위기 속에서 강해지는 대한민국의 힘이 보인다. 30년 간 풀지 못한 과제를 해결할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오랜 지원에도 성공하지 못한 소재·부품·장비 탈일본은 '장기전'이다. 그 만큼 장기 비전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고 세밀한 정책 지원이 중요하다. 몇 차례 정책을 내놓고 구호만 요란해서야 '반짝 대책'의 잘못된 선례가 되풀이될 게 뻔하다. 이번 만큼은 펠리컨의 날개짓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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