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 근무 서약해놓고 퇴직, 손해배상 책임은?

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 2019.08.12 06:00

[the L]법원 "위법한 약정으로 손해배상 책임 없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공무원이 '10년 이상 특정 직무에 근무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그보다 일찍 직을 내려놓기로 해도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위법한 약정은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에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는 대한민국이 전직 해양경찰청 소속 조종사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09년 4월 해양경찰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된 A씨는 2011년 고정익 항공기 조종사 자체 선발에 지원해 발탁됐다. 지원 당시 A씨는 '해양경찰청 고정익 항공기 조종사로 10년 이상 근무하고, 10년 이상 근무하지 않을 경우 조종사 양성과정에 지출된 교육비 등 소요경비 일체를 반납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A씨는 약 4년1개월 동안 조종사로 근무하다 2018년 1월 해양경찰청장에게 면직(일정 직위나 직무에서 물러나는 것) 신청을 했고 두 달 뒤인 3월 최종 면직처리 됐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A씨를 위해 조종사 양성과정에 지출한 약 1억2000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A씨가 지급해야 한다"며 행정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측은 A씨가 조종사 지원 당시 제출한 서약서가 계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계약을 지키지 않은 A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이 사건 약정은 법률의 근거 없이 체결된 것"이라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는 위법·무효의 계약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와 A씨가 맺은 서약이 공법상 계약에 해당하긴 하지만, 위법한 내용의 약정이기 때문에 이를 위반했어도 손해배상을 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맺은 서약이 공무원 인재개발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제13조 제4항은 '교육훈련을 받은 공무원에게는 6년의 범위에 대해 일정 기간 복무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제5항은 '제4항에 따른 복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에게 교육훈련에 든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의 반납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에서는 '6개월 이상의 국내훈련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만 훈련기간과 같은 기간을 훈련분야와 관련된 직무분야에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A씨의 경우 해양경찰청 고정익 항공기 조종사로 10년 이상 근무하도록 복무의무를 부과받고 이를 지키지 않은 경우 지원받은 교육비 전액을 반환하기로 하는 약정을 체결했다"며 "이는 최장 6년의 범위 내에서 훈련기간과 같은 기간 동안의 복무의무를 부과하도록 한 공무원 인재개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2011년 11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약 1년11개월 동안 고정익 항공기 조종사 위탁교육을 받았고 2013년 10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약 4년1개월 동안 고정익 항공기 조종사로서 근무했다"면서 "훈련기간을 2배 이상 초과해 복무했으므로 복무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판부는 "조종사 양성과정의 공익적 측면만을 강조하며 공무원 인재개발법의 관련 법령 규정에도 반하고,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는 이 사건 약정을 적법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A씨에게 손해배상을 구하는 대한민국 측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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