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에서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제징용·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서 한국과 인식을 공유하는데다,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 중국 경제에도 치명적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최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잇달아 "중국은 자유무역 체계, 질서를 중시한다. 한일 갈등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안보를 이유로 수출규제를 한 일본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중국 관영 언론도 일본의 수출규제가 지난해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처'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한일 갈등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처럼 중국이 일본보다 한국 편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중국 경제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복잡한 글로벌 공급사슬을 통해 생산되는 반도체로 일본의 규제로 한국 반도체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중국의 첨단 제조업체도 피해를 보게 된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한일 갈등으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RCEP 조기 타결과 중국-유럽연합 투자협정, 한·중·일 FTA 논의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시장을 넓혀 미국과의 무역전쟁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중국 경제매체 21스지징지(世紀經濟)신문은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한일 무역 마찰이 심화했다"면서 "이는 사실상 한국의 '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으로 RCEP 논의가 막판 스퍼트를 하려는 시기에 먹구름이 끼게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산하 세계화연구센터 주임 겸 일본연구소 연구원인 류쥔훙(劉軍紅)은 일본이 한일 갈등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류 주임은 "일본이 사실상 미국의 개입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일본은 한국과의 갈등을 끝내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자동차와 농산품 등에 대한 양보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일본이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한국으로 기울어진 미국의 마음을 자신들 쪽으로 돌리고 싶어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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