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노동관계법 개정 추진
고용노동부는 30일 ILO 핵심협약 중 아직 국내에서 비준받지 못한 결사의 자유 협약(87호, 98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29호)에 대해 외교부에 비준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1991년 ILO에 가입한 뒤 29년째 미뤄온 비준이다. 또 핵심협약 3개와 충돌하는 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도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고용부는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 규정 삭제 △퇴직 공무원·소방공무원·대학교원·5급 이상 공무원 노조 가입 허용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4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익위원이 만든 안을 바탕에 뒀다. 공익위원안은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되면서 단독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하지만 사안 하나하나마다 노사 의견 차이가 크다. 경사노위에서 벌어진 노사 대립이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전교조 합법화와 직결
가장 큰 쟁점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 문제다. 현재 산업·업종·지역 단위로 설립된 초기업노조는 해고자·실업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있다. 초기업노조 조합원은 전체의 56.6%를 차지한다. 반면 나머지 절반인 개별 기업 노조는 해고자, 실업자가 가입할 수 없었다.
고용부는 이 규정이 근로자 단결권을 보장하는 ILO 결사의 자유 협약에 위배된다고 봤다. 노조 조합원 자격을 노조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노조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는 국가의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는 ILO 권고를 받아들였다.
경영계는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조치라고 반대한다. 정당하게 해고된 자, 퇴직자, 시민단체 회원, 상급단체 활동가 등 기업과 무관한 사람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기업 외부에서 수혈된 조합원이 늘수록 정치·사회 투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은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합법화와도 직결된다. 현재 정부는 전교조를 합법노조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해직 교원을 조합원, 간부로 뒀다는 이유에서다. 해고자·실업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면 전교조도 합법화될 가능성이 크다. 단 노조법이 개정되더라도 전교조는 자동으로 합법노조가 되진 않고, 설립신고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조항 삭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된다. 현재 노조 전임자는 임금 손실 없이 노조 활동을 보장받는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한도)'를 적용받고 있다. 앞으로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사 간 협의로 결정하게 된다.
◇경영계·노동계 모두 반발
경영계는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을 경우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기업에게 돈을 받는 노조 전임자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노조 전임자가 각종 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삼는다. 고용부는 보완 대책이 있다고 반론한다. 근로시간면제한도 내에서만 급여를 지급하면 과도한 급여 지급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5급 이상 공무원, 소방공무원에 대해선 노조 가입 관련 직급 제한을 두지 말라는 ILO 권고를 반영했다. 4급이든 6급이든 실무자면 공무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5급 이상 공무원은 전체의 10.5%인 5만2551명이다.
하지만 감독·관리직 지위에 있는 고위 공무원과 소방공무원처럼 국민의 안전과 연관된 직종은 노조 가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고용부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지휘 감독·권한을 행사하는 고위 공무원은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날 정부안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가적 차원에서 노사 입장이 균형되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경영계 요구였던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조항이 포함되는 등 문재인정부 노동정책은 파탄났다"고 주장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ILO 핵심협약 비준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인만큼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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