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일어에도 능통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어로 일본인 친구와 막힘없이 대화했다. '일어까지 잘하네? 부족한 게 뭐야'라는 생각과 함께 '태국인이 일어를 배운 이유가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어떻게 일어를 잘하냐"면서 "매우 예외적인 일 아니냐"고 묻자 그는 "아니다, 주변 태국인 친구 중에 일어를 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면서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도 많다"고 답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은 뒤 지리적으로 일본과 붙어있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 경험도 없던 태국인데 많은 이들이 일어를 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내 궁금했다.
방콕을 둘러본 뒤 의문은 일순간에 풀렸다. 방콕 곳곳은 일본의 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의 흔적이 가득했고, 태국인들은 일본에 큰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콕 곳곳에서 일어를 보거나 일본식 인테리어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태국에선 일본 음식이 진미로 여겨져, 2300개 이상의 일본 식당이 성업 중이고, 태국인들은 '일본에 가서 정통 일본 음식을 먹고 싶다'며 일본 관광을 희망한다. 방콕 패션 리더들은 일본 스타일을 보여주는 웹사이트나 잡지를 찾아보고, 일본 패션 브랜드 이세이미야케의 '바오바오'백을 메길 원한다. 시세이도 화장품이나, 겐조 신발, 카시오의 지샥 시계 등도 인기가 높다.
국제적 인기 보다는 국내 인기가 더 높아 '내수용'이라는 비판을 듣는 일본 대중문화도, 태국에서의 인기가 막강하다. 일본 걸그룹 AKB48, BNK48이 방콕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땐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처럼 일본 문화에 대한 반감이 적고, 일본에 대한 전반적 호감도가 높으니 태국에서 만들어진 자체 문화 컨텐츠에도 일본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태국인들이 사랑해마지않는 영화 '쿠 깜'(Khu Kam·คู่กรรม)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을 배경으로 한 태국 여성과 일본군 장교의 사랑을 그린 소설 '차오프라야에서의 일몰'을 원작으로 한다. 태국인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으면서 '쿠 깜'은 텔레비전 드라마로 총 6차례(1970, 1972, 1978, 1990, 2004, 2013년) 리메이크 됐고, 1973, 1988, 1995, 2013년 총 4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2004, 2007년엔 뮤지컬로 상연됐다. 쿠 깜은 일본인과의 로맨스나, 일본 문화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는 평을 받는다.
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신문통신조사회가 지난해 3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태국, 중국, 프랑스 등 6개국에서 각각 1천명씩을 대상으로 지난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10일 밝혔다. 태국인들은 96.2%가 일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해 일본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
이 수치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는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이 응답한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 응답자의 79.4%는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고, 신뢰할 수 있다는 대답은 19.2%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태국인들이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두 국가 사이의 공통점이 꼽힌다. 먼저 두 국가 모두 국왕이 있는 왕실 국가로서,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감정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 두 국가는 왕실간 교류를 지속적으로 해오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현재까지 왕실이 매우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태국에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태국 왕실과 우호적 관계를 맺는 일본 왕실에 호감이 들고, 이게 자연히 일본 국가와 일본 국민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인들의 일본 사랑은 단순히 호감을 넘어선 그 무엇으로 보일 때가 있다. 즉 한류를 좋아하는 것처럼 단순한 차원의 호감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매우 의존한 상태다.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사실상 '형제의 국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태국을 '일본의 경제 식민지'라고 부를 정도다.
일본은 예전부터 태국을 동남아 진출의 허브로 보고 투자해왔다. 1970년대부터 일본은 대 태국 투자 2위 국가인 미국을 크게 앞서며 최대 투자국이 됐다. 너무나도 공격적이었기에, 당시 일본의 진출은 태국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1972년 태국의 '일제 상품 불매운동'을 발생시켰다. 물론 이후에도 일본의 투자는 지속됐다. 1980년대부터는 개발원조, 일본어 교육과 유학생 지원 등 일본 국가이미지 제고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일본은 인프라 개선 및 인적 자원 개발과 같은 분야에서 태국의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위한 경제적 원조를 제공했다. 예컨대 일본 정부는 그 당시 태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수행되고 있던 '동부 해안 개발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도움을 줬다.
방콕 차오프라야 강을 건너는 다리에도 일본 원조의 흔적이 남아있다. 강을 건너는 21개 다리 중 14개에는 '일본 다리' 등의 글자와 함께 일장기가 그려져있다. 일본의 원조를 받았다는 뜻이다.
일본은 대(對) 태국 투자의 가장 큰 손이다. 1970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은 태국에 2754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총 1.5조바트(약 58조 53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2012년 일본의 태국 투자금액은 3484억 바트(13조 6000억원)으로 전체 외국인 투자(FDI)의 63%를 차지했다. 2013년은 경제성장 둔화에 따라 23.2%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2828억 바트(11조원)로 큰 규모였다.
일본이 이토록 태국에 큰 돈을 투자하는 건 태국이 전략적 활용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 주요 국가들과 육상 및 해상 교역이 편리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무역 허브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저렴한 인건비, 25만 ㎞에 이르는 도로와 4000㎞에 이르는 철도 라인, 28개 공항 등 잘 갖춰진 물류, 전력, 수도, 통신 인프라 및 안정된 사업 환경, 국제무역 및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개방정책 등은 태국 투자를 더욱 용이케했다. 태국 내수시장이 작지 않다는 점도 매력 요소다.
여기에 2015년 아세안 경제공동체(AEC·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브루나이 등 아세안 10개국이 결성. '동남아판 EU(유럽연합)'이라고 불린다.) 덕에 태국은 더 매력적인 곳이 됐다. 아세안 경제공동체는 단일 시장 및 생산 허브를 지향해 자유로운 상품과 노동력의 이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무관세로 경쟁력있게 일본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동남아 국가에 팔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국에는 도요타, 혼다, ISUZU, 스즈키, 미쯔비시, 닛산 등 일본 자동차 대부분의 공장이 들어섰다. 태국은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며, 일본 자동차 생산대수의 90%를 차지한다. 당연히 도시바, 캐논, 니콘, 히타치 등 일본 전기 전자 업체들도 태국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태국인들이 일본 기업에서 일하게 되자, 일본 기업이 침체된 태국 경제를 살려주고 고용효과를 내준다며 일본 호감도는 더욱 커졌다.
또 많은 일본 기업이 진출하고, 태일 교류도 늘어나면서 많은 일본인이 태국에 거주하게 됐는데 이 역시 일본에 대한 호감도를 키웠다. 일본인이 많아지면서 일본인을 상대로한 상점 등이 늘고, 일본 문화나 음식 등을 접할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하도 많아 '도쿄도 방콕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방콕 일본인 밀집 주거지역(방콕 중심부 수쿰비트)이 대표적다. 이곳엔 '일본 거리'란 이름을 가진 거리가 있고, 일본 음식이나 일본 재료를 파는 슈퍼마켓, 일본 학교,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태국어 학원도 몰려있다. 태국엔 2015년 기준 6만7000여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이중 5만여명이 방콕에 거주한다.
다음 편에서는 일본과 닮아가는 태국의 자취를 조명하고, 태국에 몰려드는 일본인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단면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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