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만 모십니다"

머니투데이 민승기 기자 | 2019.07.25 04:30

차별화 전략 내세우는 요양병원, 슈퍼박테리아 전용 입원실 운영

악몽의 박테리아로 불리는 슈퍼박테리아 중 하나인 CRE(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종). /사진=미 질병통제센터(CDC).

항생제 오남용 문제로 여러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다제내성균(일명 슈퍼박테리아)'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슈퍼박테리아 환자'만 받는 병원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거리로 내몰렸던 슈퍼박테리아 환자들이 요양병원의 새로운 수익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 무슨 일일까.

◇"'슈퍼박테리아 환자' 웰컴" = 그동안 요양병원들은 남는 격리실과 입원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를 대며 슈퍼박테리아 환자 입원요청을 거부해왔다. 단순 보균자들은 격리실이 없어도 되지만 혹시 슈퍼박테리아가 확산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심지어 병원 내 격리실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가 병원 밖으로 내 쫓기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상황이 변했다. 병원들이 앞다퉈 슈퍼박테리아 환자 유치에 적극적인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서울 소재 H요양병원이다. H요양병원은 얼마 전 병원 내 입원실 전체를 슈퍼박테리아 환자만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시설을 확충했다.

서울 소재 O요양병원도 슈퍼박테리아 환자만을 위한 입원병동 운영을 준비중이다. 현재 병원 간호사 등에게 향후 계획을 전달하고 자체적으로 감염교육까지 실시 중이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이하 CRE) 환자 등 슈퍼박테리아 감염환자를 적극적으로 받는 병원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요양병원은 입원료가 정액제로 운영 되다 보니 환자가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갈 곳없는 슈퍼박테리아 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입원실 운영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슈퍼박테리아 환자 기피현상으로 환자를 보낼 곳이 없어 전전긍긍했던 대형병원들도 숨통이 트였다.


이재갑 한림대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해 여름에만 하더라도 격리실이 부족한 대학병원들이 타 병원에 전원을 요청해도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슈퍼박테리아 환자만 받는 병원이 생겨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단순 감염에도 사망... '항생제 불용시대'의 역설 = 슈퍼박테리아 환자를 둘러싼 병원들의 기피와 모집 현상은 한국의 항생제 실태를 보여준다.

슈퍼박테리아 환자는 항생제에 과도하게 노출된 나머지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약이 안통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다. 항생제에 노출된 박테리아가 자기복제 과정에서 내성을 갖는 형질을 선택하게 되고 이렇게 생겨난 저항성 유전자는 다른 박테리아에게 전달된다.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을 갖게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2016년 기준 하루 1000명당 34.8명이 항생제를 처방받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1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부는 항생제 적정 사용 여부에 따라 외래진료비를 가산 또는 감액해 지급하는 '가감지급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영국 국가항생제 내성 대책위원회(AMR)는 항생제 내성 확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는 2050년에는 연간 1000만명에 이르는 감염병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2차세계대전 때의 연간 희생자 수와 비슷한 숫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다 강력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상태라면 단순 감염에도 쓸 약이 없어 사망하는 '항생제 불용시대'가 올 거라는 경고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항생제 내성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다"며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항생제를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도록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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