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정무 사안'에 '경제 보복' 최초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정무적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조치를 동원한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굉장히 주목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근 방미 결과를 설명하면서 일본이 과거사(일제 식민지배하 불법적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을 경제적으로 손보려 한다는 점을 미국이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일 양국은 수교 이후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에 대한 상반된 역사인식과 일본의 망언, 독도 도발 등으로 숱하게 충돌했다. 그럼에도 과거와 미래,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으로 양국 관계를 관리해 왔다.
한미일 동맹을 축으로 한 안보 협력도 상대적으로 굳건했다. 양국이 경제·안보·문화·인적교류 등의 측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해 온 배경이다. 하지만 일본이 추가로 경제보복에 나설 경우 우리 정부의 맞대응을 넘어 한일 관계 전반의 전면 재설정 움직임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크다.
②아베의 '선공'vs文대통령의 '반격'
한일 양 정상이 이번 갈등의 최선두에서 대척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는 결이 다른 상황 요인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관저가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참의원선거 TV토론회에서 경제보복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의 '대북제제 위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응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다.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 등의 의혹을 제기한 아베 총리를 향해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마이클 푹스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한일 갈등은) 최고위급 문제로 비화해 통제를 벗어났다. 실무급에선 풀 수 없다"며 "개입할 수 있는 건 트럼프 대통령뿐이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날 지 모른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양국간 대화가 사실상 완전히 단절됐다는 점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등의 철회를 요구하는 우리 정부의 외교적 협의 제안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주 (한일) 수출통제 당국의 실무급(과장급) 협의가 있었지만 일본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 전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한일 관계 경색 국면에서 양쪽 모두 물밑교섭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현재로선 그런 기류도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수출규제 관련 대화를 거부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우리 정부가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한 분쟁 해결 절차에 응하지 않은 데 대한 보복 성격도 강해 보인다. 오는 18일까지 답변을 요구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한국 정부가 수용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④"중재·조정없다" 꿈쩍않는 트럼프
한일 사이에서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해 온 미국의 태도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4년 3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격화한 한일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주선했다. 한미일 협력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중재역'을 자임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면 이번 사태를 주시하면서도 개입을 주저하는 모습이 또렷하다.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당사국간 외교적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기본 기조다. 동맹의 가치보다 국익,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가 한미일 3자 협력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행정부 핵심 인사들은 최근 정부 외교 당국자들의 방미 과정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기 어렵다"면서도 '관여'(engage)의 필요성엔 동의했다고 한다. 한일 갈등이 미국의 경제·안보에 미칠 손익계산서를 먼저 따진 후 역할론을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한미일 안보 동맹과 한미, 미일 양자 관계의 현상 유지를 위한 '상황 관리'에 주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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