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철강 뒤흔든 '고로 조업정지' 결정 되짚어보니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황시영 기자, 우경희 기자 | 2019.07.10 06:30

[탁상행정에 멍든 철강](종합)

편집자주 | 지방자치단체의 고로(용광로) '조업정지 10일' 결정이 철강업계를 뒤흔들었다. 최대 10조원 규모의 손실로 이어질뻔 했던 이번 결정은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탁상행정'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사건 발생 과정을 되짚으며 무엇이 문제였는지 점검해본다.



"철강 10兆 쇼크, VAR 판독하듯 다뤘다"


[탁상행정에 멍든 철강]①성분 분석없이 오염물질 규정…업계와 숙의 없이 초고속 결정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 전경
현대제철에 고로(용광로)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이 확정된 지 한 달이 흘렀다. 9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현대제철의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당장 고로가 멈춰 설 위기는 모면했다.

위원회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본회의를 열어 "제철소 공정 특성상 조업이 중단될 경우 입을 중대한 손해를 예방해야 할 필요성이 긴급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부터 10일간 내려질 예정이었던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고로 조업정지 행정처분은 보류됐다.

하지만, 최대 10조원의 손실이 예상됐던 이번 사안은 오염물질 분석과 업계와의 소통 절차가 생략된 채 진행된 탁상행정의 결과물로 평가된다.

◇환경단체 고발에서 조업정지까지 1달도 안 걸려 =사건이 출발점은 '영상물 촬영'이었다. 지난 2월 한 시민이 전라남도 포스코 광양제철소 고로에서 배출되는 연기를 촬영했다. 환경단체는 이 영상물을 지방자치단체에 대기환경오염물질 불법 배출 증거라며 건넸다. 환경부는 철강업계가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했다고 유권 해석했고, 지자체는 포스코에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사전통지했다.

전남 광양에서 발생한 불씨는 포스코 포항 제철소와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로 옮아붙었다. 경상북도가 포항 제철소에 조업정지 10일을 사전통지했고, 충청남도는 당진 제철소에 행정처분 사전 통지 후 청문 절차 없이 바로 조업정지 10일을 확정했다. 환경단체의 고발부터 행정처분 사전 통지 및 확정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놀란 철강업계는 최대 10조원 규모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호소하고 나섰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1개 고로가 10일간 가동을 멈출 경우 복구에만 3개월이 걸린다. 철강 120만톤, 금액으로 환산하면 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조업정지 대상 고로는 3개여서 2조원이 넘는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는 총 12개의 고로가 운영 중인데, 안전밸브와 가스 배출 구조는 모두 같다. 만약 3개 고로에 조업정지 조치가 내려지면 나머지 9개 고로 역시 같이 조업정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모든 고로가 10일 조업정지를 받으면 약 10조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철강을 사용하는 자동차, 조선, 가전 등이 받게 될 연쇄 피해까지 감안하면 국가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결정이다.

때마침 터진 제철소 정전사고는 고로 가동이 중단될 경우 발생할 막대한 피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지난 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한 정전으로 5개 고로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가동중단이 5일을 넘어설 경우 '조업정지 10일'과 맞먹는 피해가 우려됐는데, 다행히 하루 만에 재가동했고, 손실 규모는 40억원에 그쳤다.

◇"오염물질 분석도, 업계와 소통도 없었다"=철강업계는 고로 가동중단이라는 극단적 조치가 내려지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A철강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고로에서 나오는 연기를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근거로 조업정지 10일 예고와 결정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유권해석이 고로에서 배출된 연기를 '오염물질'로 규정한데 따른 것인데, 이 연기의 구성 성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업계는 고로 연기 대부분이 수증기라는 입장이다. 함께 배출되는 잔류가스도 2000cc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시 10여 일간 배출하는 양에 불과하다고밝혔다. 한 철강회사 관계자는 "축구장에서 비디오판독(VAR) 하듯 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실 우려가 있는 문제를 다룬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조업 중단으로 피해를 입는 철강업계와 제대로 된 소통 없이 결정이 이뤄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고로에서 연기가 새어 나온 안전밸브 '블리더'(bleeder)에 대한 이해부족이 대표적이다.

블리더는 공정에 이상이 발생하면 고로 폭발을 막기 위해 가스를 배출하는 폭발방지 안전시설이다. 고로 정비 중에 폭발을 예방하려면 블리더를 개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정비 시 블리더 개방은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고로 안전 절차고, 다른 대체기술이 없다는 것은 업계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실제로 블리더 개방을 인정하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의 판단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한국의 고로 가동 중단 위기를 전하며 현지 철강업계 관계자 말을 인용해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블리더를 개방하지만 법령 위반이 아니라 문제가 된 적도 없다"고 보도했다.

업계는 정부와 지자체가 철강사들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면 조업중단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최근 철강업계, 지자체,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8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B철강사 관계자는 "뒤늦게 민관협의체를 마련한 것 자체가 정부가 업계와의 진지한 소통이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안정준 기자



용광로는 죄가 없다


[탁상행정에 멍든 철강]"정비시 폭발막기위해 블리더 개방" vs "블리더 개방 자체가 불법"

용광로(고로)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그림/사진=한국철강협회
고로(용광로) 가동중단 논란의 핵심 키워드는 '블리더(bleeder, 연기가 새어나오게 하는 안전밸브)'다.

철강제품 제조에는 용광로 방식과 전기로 방식이 있다. 전기로는 많은 양의 고품질 고철과 선철을 계속 투입해야 해 우리 상황에 맞지 않다. 제품 품질도 용광로 방식보다 떨어진다.

용광로는 상부에서 소결광(철광석)과 코크스(유연탄)를 연속적으로 투입하고 하부에서는 고온·고압의 바람을 불어넣어 쇳물을 만든다. 거대한 고온·고압 용기인 고로는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15~20년간 쇳물을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분진을 포집해 발전연료로 재활용하거나 폐기 처리한다.

고로는 주기적으로 정비를 위해 고온·고압의 바람을 멈추는데(휴풍), 이때 외부 공기가 고로 내부로 유입돼 잔여 가스와 반응해 폭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고로 상부에 위치한 안전밸브(블리더)를 개방하고 대기보다 높은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증기를 주입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조업정지 위기는 환경단체 고발로 촉발됐다. 환경단체는 양사가 고로에 설치된 블리더를 열어 대기오염 물질을 불법적으로 배출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고로 내부 정비시 내부 압력 탓에 폭발이 발생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블리더를 열어두는데, 환경단체는 임의로 블리더를 여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본다. 이들은 철강사들이 블리더를 비상시에만 사용하도록 방지시설 설치 면제를 받았는데, 정비를 핑계로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해왔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에 조업정지 조치를 내린 충청남도도 "방지시설 없이 새벽 시간대에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 것은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철강업계는 고로 정비시 안전밸브를 개방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필수 조치라는 입장이다. 정비시 고로 내부 압력이 외부 대기 압력보다 낮아지면 폭발할 수 있어 블리더를 개방해 잔여 가스를 배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고로 안전 절차고 다른 대체기술이 없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게다가 블리더 개방의 환경영향도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철강협회는 "안전밸브를 통해 배출되는 것은 대부분 수증기"라며 "함께 배출되는 잔류가스도 2000cc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시 10여일간 배출하는 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블리더를 개방함으로써 생기는 배출 오염물질이 미미하고, 대기환경보전법에 배출관 설치와 관련한 안전 예외규정이 있는 만큼 조업중단이 이뤄져야 하는지 법리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기환경보전법 제 31조 1항 2호는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 조절장치나 배출관을 설치해서는 안된다. 다만 화재, 폭발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허용된다"고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황시영 기자



'환경과 함께', 철강사들의 생존법


[탁상행정에 멍든 철강]환경과의 공존 화두로…'친환경 투자' 대세로 자리잡아

'조업정지 10일' 사건은 탁상행정에 따른 결과물이지만, 철강업계가 환경과의 공존법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연소공정이 필요한 업의 특성상 철강업은 전체 산업군에서 오염물질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제 철강업은 환경과 함께 2인 3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철강업은 어쩔 수 없이 '원죄'가 있다. 환경부가 '굴뚝자동측정기'가 부착된 전국 6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사한 결과 제철제강업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6만3384톤으로 발전업과 시멘트제조업에 이어 3위였다. 사업장별 배출량 기준으로는 충남 현대제철과 전남 포스코, 경북 포스코가 각기 1, 3, 4위에 올랐다.

공정상 대기오염물질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점결탄 등을 가열해 고로 연료로 투입하는 코크스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 비중이 높다. 고로에서 코크스를 때는 과정에서도 나온다. 원료 이송·보관 과정에서는 비산먼지도 일부 발생한다. 게다가 경북과 전남, 충남 제철소는 전 세계에서도 단일 제철소 기준 수위권을 다툴 만큼 규모가 크다.

업계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환경 투자를 집행해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비등한 데다, 국내에서는 특히 미세먼지가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된 가운데 한층 강도 높은 환경 투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제철소의 뒤늦은 미세먼지 저감 설비 확충이 문제시돼 여론이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업계가 올해 일제히 대규모 중기 환경 투자결정을 내린 것은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매년 설비투자 예산의 10%를 환경개선에 투자해온 포스코는 2021년까지 친환경설비 구축에 1조7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발전설비 21기 중 노후한 부생가스 발전설비 6기는 2021년까지 폐쇄하고 3500억 원을 투입해 최신 기술이 적용된 발전설비를 세울 예정이다. 나머지 부생가스 발전설비 15기와 소결로 3기 등에는 3300억 원을 투입해 질소산화물 배출을 대폭 낮출 수 있는 선택적 촉매환원 설비 등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철강 생산 시 발생하는 비산먼지 저감에도 투자를 늘린다. 포스코는 현재 먼지가 흩날리는 것을 방지하는 밀폐식 구조물 '사일로' 등 33개 옥내저장시설을 운영 중인데 2020년까지 3000억원을 투입해 사일로 8기 등 옥내저장시설 10기의 추가 설치를 추진 중이다.

현대제철은 2021년까지 환경개선에 53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4600억원을 대기오염 방지시설 개선에 투자하고, 비산먼지 환경개선에도 7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전로 집진기 설치 등 제철소 환경 보완에도 약 15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은 밀폐형 원료저장소, 밀폐형 하역설비를 비롯해 집진기, 배수종말처리기 등에 약 1조 8000억원을 투자한 상태다. 2021년까지 해당 투자가 집행되면 약 2조4700억원 가량이 환경에 투자된다.

A철강사 관계자는 "기업 규모가 확대되며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증가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환경개선 설비투자를 지속 확대해 배출량을 대폭 절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내수 줄고 수출길 좁아지고…신음하는 철강


[탁상행정에 멍든 철강]올해 글로벌 철강수요 증가율 3.9%→1.4% 급감…수출길도 좁아진다

'내수는 줄고, 수출 장벽은 높아지고…'

설상가상이다. 산업의 쌀 철강산업 앞날이 어둡다. 내수시장이 갈수록 축소되는데 해외에선 미국, 유럽 등 주요 수입 국가들이 장벽을 높이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세계 철강수요 증가율이 지난해 3.9%에서 올해 1.4%로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이너스 성장은 겨우 면하겠지만 사실상 철강 수요 증가가 제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 상 숫자보다 더 참혹한건 수출 현장이다. 미국은 지난해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철강 쿼터제를 실시했는데, 올해 대미 철강 수출은 2015~2017년의 70% 까지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철강업체들은 분기마다 수출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 수출로 이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내수는 기대를 접어야 할 상황이다. 철강이 쓰이는 건설 경기가 위축된데다 자동차 등 제조업 경기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조선사 수요가 그나마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게 위안거리지만 전체 수요 감소 흐름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 비용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규제 강화도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현 정부 정책기조인 탈원전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생산비용이 늘어나고 판매처가 좁아지는 그야말로 이중고다.

세계 철강시장 전망도 불투명하다. 중국의 값싼 철강 공급이 이어지는 가운데 철강산업 마진이 줄어들고 있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인도 타타스틸이 빠른 속도로 철강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있다. 단가 하락과 수요 부진으로 만들수록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업성숙도를 고려한 철강산업 부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철강 생태계 강건성'이다. 우정헌 포스리 연구위원은 "이미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는 철강산업의 생태계 강건성 유지는 중요한 과제"라며 "생산성, 견고성, 혁신성 등을 정량 지표로 책정한 후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수립해 내수시장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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