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장시간 노동과 회사 임원진의 언행 때문에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무리한 업무량 탓에 야근을 하면 임원진은 "능력이 없으니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지"라는 말을 일삼는다. 업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한테 뭘 바라겠냐"는 모욕적인 말도 일상이다.
A씨는 "대표나 임원진의 언행이 비슷하다 보니 사내에 고충을 처리해달라고 말할 곳도 없다"며 "경찰에 신고할 위법 행위는 아닌 것 같고, 혹여라도 했다가 일자리를 잃거나 업계 내 평판이 나빠질까 두려워서 참는다"고 토로했다.
16일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안(제76조 2)에 포함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법이 시행된다. A씨가 겪고 있는 일처럼 문제 삼기 모호한 사례도 개정안이 시행되면 징계 대상이 된다. 폭력·성희롱·부당노동행위 등 기존 법에 반하는 행위 외에 따돌림·차별·사적 지시 등 은밀한 괴롭힘에도 법 적용이 가능하다.
이 법이 정의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크게는 △폭언·폭행 △모욕·명예훼손 △부당 업무지시 △따돌림·차별 △강요 등 유형으로 나뉜다.
개정안에 맞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나온 직장 내 괴롭힘 예시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실제 사례에 적용해보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24시 메신저'= B씨가 일하는 회사 대표이사는 늦은 밤이나 새벽, 주말 가리지 않고 사내 메신저로 업무를 지시한다. 메시지에 바로 답을 안 하면 '왜 소통이 안되냐'는 짜증이 돌아온다.
△'말로만 휴가' 휴가를 못 쓰도록 영향력=C씨는 휴가를 썼다가 팀에서 쫓겨났다. 회사에서 남은 연차를 소진하라며 지정휴가가 나와서 팀장한테 쉬겠다고 말했더니 '매년 지정휴가 나오지만 쓰는 사람 없다'는 말을 듣고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심부름꾼 전락' 사적용무 지시 = D씨는 임원수행기사이지만 상사의 사택 청소·설거지·요리, 세탁소에 옷 맡기기, 골프장 방문예약, 사모님 관광 안내 등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일을 지시받았다.
△'늦었으면 세잔' 음주·흡연·회식 강요=E씨의 상사는 출장 다녀오느라 회식에 1시간 늦은 E씨와 동료에게 '후래자삼배'(술자리에 늦은 사람에게 3잔 연속 마시게 하는 것)라며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밖에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주지 않음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 △회사 비품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급하지 않음 △특정 근로자의 업무·휴식 모습만 지나치게 감시 △업무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 △업무와 관련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 등이 새 법이 지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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