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사는 공간은 판자촌 쪽방 속 쪽방.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무등록·무허가 방이다. 구청에서 관리하는 문 앞 2평 남짓 공간은 86세 노모 김모씨와 정신장애를 가진 56세 큰 형의 공간이다.
이씨의 방은 방구석 커튼 뒤에 숨겨져 있었다. 10년 전 구청에서 바로 옆 쪽방을 폐쇄하자 이씨는 벽을 뚫고 들어갔다. 창문이 없는 이씨의 방은 한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씨는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하루 딱 한 번 빛을 본다.
이씨처럼 1980~1990년대 가난에 쫓겨 판자촌에 정착한 사람들은 판자촌 구석 쪽방까지 밀려나 있었다.
여름철 판자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찜통더위가 덮쳤다. 선풍기가 있었지만 이미 방 안 공기는 데워질 대로 데워져 더운 바람을 옮길 뿐이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쪽방 안에서 10분, 등과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노모 김씨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방을 나와 골목 지붕 아래 그늘에 앉았다. 김씨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선풍기 바람을 직접 맞으면 살이 시리도록 아리다"며 "너무 더울 땐 수돗물을 받아 놓고 아들과 서로 끼얹는다"고 말했다.
찜통더위가 수그러들면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호우와의 사투도 있다. 개포동 구룡산 산 밑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배수가 잘 안돼 집중 호우가 내리면 골목과 방안으로 물이 찬다. 지붕은 천과 비닐로 덮여 있어 물이 자주 샌다.
25년째 구룡마을에 사는 서모씨(58)는 "3년 전쯤 장마로 방에 물이 무릎까지 찬 적이 있다"며 "매년 지붕을 수리해야 하는데 올해는 허리가 아파서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화재 위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구룡마을은 어른 한 명이 겨우 다닐 만한 통로를 사이에 두고 판잣집 수십 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붕을 덮은 천과 벽을 둘러싼 비닐, 쪽방 중간중간 쌓인 쓰레기 더미는 불이 순식간에 붙는 가연성 물질이다.
30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구룡마을을 찾은 부모들은 이제 70~80대 노인이 됐다. 수십년 전 비닐하우스,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다 판자촌까지 떠밀려 왔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노모 김씨는 "기초연금 30만원 가지고 다 큰 아들 2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며 "무슨 전생에 죄가 그렇게도 많은지 이렇게 고통을 받는 삶은 살고 있는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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