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의 책 다섯

김겨울(유튜브 채널 '겨울서점' 운영자) ize 기자 | 2019.07.08 05:30
지금, 주목해야 할 여성 작가의 시집과 소설 다섯 권을 ‘ize’가 추천한다.
©YES24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최영미)
‘여류 시인’은 그 ‘여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모욕당했을 것인가. 문단 밖의 사람들은 이를 자세히 알기 어려웠지만, 최영미 시인의 행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과감히 성폭력을 폭로하고 소송에서 승소하여 돌아온 최영미 시인을 이제 다시 작품으로 만날 차례다. 시집을 내기 위해 지난 4월 출판사를 설립한 최 시인이 신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출간했다.‘독이 묻은 종이’, ‘지리멸렬한 고통’, ‘바위로 계란 깨기’, ‘등단 소감’ 등의 작품에서 그간의 경험과 문단을 향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의 이름으로’에서 시인은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이 받았던 차별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연대를 요청하기도 한다(어머니라는 / 아내라는 이름으로 / 노예 혹은 인형이 되어 (……) 두려움을 넘어 / 내가 우리가 되는 기적). 최영미 시인은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을 거치며 자신이 위축되었고, 시집을 내면서 변호사의 조언을 얻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시에서는 그 과정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 외에도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는 이야기, 사랑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 역시 담겨 있다. 오랜 시간 시를 써온 시인의 손에서 평범해보이는 단어들은 특별한 순간으로 재탄생한다. 그저 밥 짓는 이야기가 이토록 근사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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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 수상한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두 작품을 비롯하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가 수록되어 있다.
아름답다. 이 소설집을 읽으며 가장 처음 든 생각이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슬프고 실망스러울 때 상상의 세계를 더욱 황폐하게 그릴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초엽 작가는 그 어떤 작품에서도 냉소에 굴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낸다. 자신의 용기를 기꺼이 손 내밀어 표현한다. 세계를 믿는 것, 우리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그런 태도를 탁월한 소설로 녹여내는 것은 쉬이 허락되는 능력이아니다. 우리는 아주 믿을 만한 새로운 작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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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김행숙)
현대문학의 한국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2’ 중 한 권이다. 스물 여섯 편의 시와 귀를 주제로 한 에세이 ‘시간의 미로’가 수록되어 있다. 표지에 실린 아티스트 지니 서(Jinnie Seo)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1914년’은 1914년 4월 16일에서 출발해 2014년 4월 16일에 도착하고, 1984년에 출발하여 2084년에 도착한다. 시인은 몇 번이고 백 년의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가장 감탄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돌해오는 세계 속에서 기어이 ‘화농 같이 무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끌어안고 마는 이 시인에게 나는 묻고 싶어진다. "어떻게 아직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나요?" 시집을 덮을 때 즈음 시인은 조용히 답한다. "백 년, 또 백 년, 세기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화농을 끌어안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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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전작 ‘종의 기원’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다. '28',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 등으로 한국 소설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된 정유정 작가가 이번에는 보노보를 소재로 선택했다. 직전에 쓴 ‘악의 3부작’과는 다르게 경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보노보 사육사인 진이는 정유정 작가의 작품 중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여성이다. 다정하고, 똑똑하고, 성숙한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은 진이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면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경쾌하고 따뜻하긴 하지만 정유정 작가의 소설답게 그 과정에 박진감과 스릴이 넘친다. 여기에 더해 보노보의 습성이 중요한 계기로 제시되는데, 부계 중심이고 정치적인 침팬지와는 달리 모계 사회를 이루며 평화롭게 사는 보노보의 모습을 보고 보노보를 페르소나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구글에 보노보를 검색해 그 깊고 동그란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정유정 작가의 말이 절로 이해될 것이다.
다른 인간의 소리, 다른 종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의 삶을 존중하는 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를 돕는 일. 그런 기적의 순간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왠지 비 오는 날의 숲 냄새도 나는 것 같은, 여름에 어울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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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앨리 스미스)
영국 작가 앨리 스미스의 ‘사계' 중 첫 번째 작품이다. 포스트 브렉시트, 즉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브렉시트 이후 약자와 소수자를 쉽게 배척하는 분위기는 비단 영국만의 것은 아닐 것이고, 그만큼 이 작품 역시 영국 밖의 세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 문장이 찰스 디킨스를 소환한다. “최악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최악의 시절이자 최고의 시절이었던 디킨스의 시대보다도 우리는 후퇴했다고 말하는 듯하다.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이 최악의 시절에도 이웃집의 게이 노인 대니얼과 친해지고, 미술사 강사가 되어 여성 예술가 폴린 보티를 이야기한다. 엘리자베스가 대니얼의 집에 놀러가는 걸 탐탁지 않아 하던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역시 그 나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엘리 스미스의 글은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소설 같고, 때로는 에세이 같다. 신화적이기도 하고 꿈꾸는 듯도 하다. 이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는 그가 표현하고자 한 다중의 관점을 성실하게 구현해낸다. 그런 만큼 이 이야기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하겠지만, 앨리 스미스의 글에 공명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배제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앨리 스미스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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