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법률사무소 AS] '4억짜리 업어치기' 사건의 전말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 2019.07.06 09:00

[the L] 영어강사는 왜 공무집행방해 아닐까…경찰관 상해죄 인정된 이유는

편집자주 |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해드립니다. 격주 주말마다 지면 위에 조그만 법률사무소를 열어봅니다. 조금이나마 우리네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본래 격주마다 내는 주말법률사무소입니다만, '면허증 뺏으려는 여성 제압하다 4억 물어주게 된 경찰' 사건은 좀더 자세한 사정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Q&A로 사건의 전말을 풀어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차선 끼어들기 위반을 적발해 범칙금 납부통고서를 발부하려던 경찰관으로부터 운전면허증을 뺏으려 한 영어강사가 거꾸로 제압당해 상해를 입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정부와 경찰관이 4억3900만원을 배상하게 된 사건입니다.



우선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도된 민사소송 판결 기초사실을 종합하면, 지난 2012년 3월 15일 저녁 서울 강남구에서 핵안보정상회의 교통단속 중이던 경찰관은 영어강사 A씨가 자신의 BMW 승용차로 끼어들기가 허용되지 않는 양재전화국 사거리 교차로 2차선에서 1차로로 끼어들어 도곡1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경찰관은 즉시 A씨를 정차시켜 인도로 나오게 한 다음 교차로통행법위반으로 범칙금 납부통고서를 발부하기 위해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청했습니다.

A씨는 10분 이상 면허증 제시 요구에 불응하다 뒤늦게 운전면허증을 넘겼고, 이후 경찰관이 교차로통행방법 위반으로 범칙금 납부통고서를 발부하려 하자 A씨는 납부통고서 받기를 거부하며 운전면허증을 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은 PDA에 단속정보를 계속 입력하려 했고, A씨는 경찰관으로부터 운전면허증을 뺏기 위해 경찰관의 제복 주머니와 어깨 부분을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경찰관은 오른팔로 A씨의 목을 감고 한쪽 발로 A씨의 오른쪽다리를 건 상태에서 그를 왼쪽 방향으로 돌려 넘어뜨려 제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8주간의 우측 경골 고평부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오른쪽 무릎에 운동장애가 오는 등 영구적 노동능력상실률은 23.12%로 평가됐습니다.

경찰관은 상해죄로 기소됐고, 형사소송에서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아 2013년 확정됐습니다.

이후 A씨는 경찰관이 가한 불법행위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정부와 경찰관을 상대로 14억3100여만원을 달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습니다. 최근 1심 재판부는 A씨의 청구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책임은 일부 제한해 4억39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A씨는 지난 3년간 6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고소득자였습니다.

문) 경찰관이 잘못한 것인가요? 오히려 정당방위, 혹은 정당행위가 아닌가요.

답) 경찰관 역시 자신이 상해죄로 기소되자 실제로 정당방위 혹은 정당행위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현행 도로교통법 제163조 제1항은 경찰서장은 범칙자로 인정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 범칙금 납부통고서로 범칙금을 낼 것을 통고할 수 있는데, 납부통고서 수령을 거부한 사람에 대해선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법 제165조 제1항에서는 납부고지서 수령거부자에 대해선 지체없이 '즉결심판'을 청구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경찰청의 교통단속처리지침도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경찰관은 A씨가 범칙금 납부고지서 수령을 거부한 이상 도로교통법이나 경찰청 지침에 따라 즉결심판을 청구하면 되는 것인데, 계속해서 범칙금납부통고서를 발부하려 강행한 점이 문제가 됐던 겁니다. 아울러 경찰관은 키 180㎝의 남성이었고, A씨는 키 158㎝의 여성이었습니다.

1심 법원은 경찰관이 경찰청 지침이나 도로교통법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범칙금통고처분을 강행한 점이나 그 과정에서 여성인 A씨가 신체조건상 그다지 피고인에게 크게 위해를 가할 상황도 아닌 점,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동료 경찰이 서서 지켜보고 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경찰관이 A씨를 업어치기 식으로 땅바닥에 강하게 쓰러트리는 건 정당행위나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문) 경찰관의 상해가 인정됐음에도 징역형 아닌 벌금형이 나왔는데, 양형이 어떻게 산정된 것인가요.

답) 해당 경찰관은 형사소송에서 벌금 50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고, 확정됐습니다. 현행 형법상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는 건 매우 가벼운 처벌입니다. 처벌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양형을 사실상 최대한 낮췄다고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는 판결의 양형사유에서 나타나는데요. 형사법원 1심은 "경찰관은 초범이고 교차로통행관련 교통질서를 위반한 피해자에게 범칙금 통고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운전면허증을 돌려받으려고 피해자에게 다가가자 위해를 당할 수 잇다는 생각에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에 이르게 된 점에서 그 동기에 참작할 바가 있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아울러 "피해자와 비록 합의하진 않았지만 경찰관이 피해자를 위해 2000만원을 공탁했고, 범행에 깊이 반성하고 차후 재범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있으며, 고교 졸업 이후 의무경찰로 근무하다 경찰에 채용돼 근무하는 동안 표창을 받는 등 성실히 근무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벌금형을 선택해 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문) 경찰관 어깨를 잡은 A씨는 '공무집행방해' 아닌가요.

답) 아닙니다. A씨는 공무집행방해 및 재물손괴죄의 피의자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A씨의 혐의에 대해선 모두 무혐의 결정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판결문에는 설시되어 있지 않으나, 현행법상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만 합니다. 수사기관의 판단 근거는 나와 있지 않으나, 체격 차이가 나는 여성이 경찰관의 어깨를 잡았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공무집행을 방해할 정도의 폭행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 민사소송 판결이 형사소송 판결과 다르게 결론을 낼 수는 없는 것인가요.

답) 실무상 형사소송에서 경찰관의 상해 혐의가 인정돼 확정까지 됐다면, 민사소송에서 경찰관의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최소한 이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민사재판에 있어서 이와 관련된 다른 민·형사사건 등의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뒤집기 위해선 "당해 민사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내용에 비추어 관련 민·형사사건의 확정판결에서의 사실판단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될 경우(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다55472 판결 참고)"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A씨가 낸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경찰관이 불법행위(상해)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볼 추가적인 증거가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민사소송 재판부는 형사소송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민사소송 재판부에서도 그 손해액 인정에서 사정을 두어 상당 부분 감액이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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